ⓒ (주)팝엔터테인먼트
나는 농촌과 그리 친숙한 사람은 아니다. 나는 경상남도 마산에서 태어났다. 70년대 말 마산은 부흥하는 항구 도시였다. 어딜 봐도 시골스러운 곳은 없었다. 일 년에 한 번 전라남도 쌍암으로 갔다. 선산이 있는 곳이다. 전국에 흩어진 아버지 형제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다. 지금은 제사 같은 것은 지내지 않는다. 세상은 현대화되고 가족은 흩어지고 현대의 아이들은 제사를 배울 일도 없다. 어린 시절에는 쌍암이 싫었다. 자동차 도로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농촌이었다. 선산에 가려면 산 아래 차를 세우고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산길은 진흙 범벅이었다. 새로 산 프로스펙스 운동화도 진흙 범벅이 됐다.
쌍암에도 아이들은 있었다. 제사를 마치고 산을 내려가면 넓은 논을 낀 동네가 하나 있었다. 집이 대여섯 모여있는 동네였다. 오래된 기와집들이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서로 궁금한 게 많다. 나는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어떤 집 마당에 모여있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뭐하고 있노?” 아이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맨발로 마당의 거위들을 몰고 다녔다. 나는 거위가 그렇게 큰 새라는 사실은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거위가 개보다 더 집을 잘 지키는 동물이라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거위는 낯선 사람을 추격해서 쫓는 습성도 있었다. 나는 울면서 쫓겨났다. ‘이런 촌에 살다가는 거위 밥이 되고 말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도망쳤다.
어쩌면 이 글은 영화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농촌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는 도시 사람의 고백 같은 글이 될 것 같다. 나는 2002년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를 보러 극장에 갔다. <집으로>의 무대는 전라남도 쌍암 만큼이나 농촌 아니 벽촌인 충청북도 영동군 궁촌리다. 모두 호두 농사를 짓는 작은 마을이다. 집안 사정 때문에 어린 상우유승호 분는 여름방학 동안 외할머니김을분 분 집에 맡겨진다. 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를 친구 삼아 자란 상우는 모든 게 불만이다. 가게도 없다. 가로등도 없다. 수세식 화장실도 없다. 어느 날 상우는 후라이드 치킨이 너무 먹고 싶어진다. 말을 하지 못하고 글도 읽지 못하는 외할머니에게 후라이드 치킨을 겨우 설명한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자랑스럽게 상우를 위해 한 요리는 닭백숙이다. 영화는 그렇게 두 사람의 일상적 갈등을 그려내다가 어느새 둘을 친구로 만든다. 상우는 닭백숙을 사랑하게 된다. 할머니를 사랑하게 된다. 할머니의 고장을 사랑하게 된다.
그런 영화들이 있다. 어린 시절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아이들은 자랐다. 마음대로 자랐다. 어디서나 자랐다. 이게 요즘 시절에는 또 어떤지 모르겠다. 농촌에서 사는 아이들 숫자는 점점 준다. 시골 학교들은 문을 닫는다. 어린 시절 농촌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줬던 MBC 드라마 <전원일기>도 2002년에 종영했다. 나는 종종 그때가 좀 그립다. 매년 한 번은 익어가는 가을 벼가 가득한 쌍암에 가던 날들이 그립다. 가을 벼가 펼쳐진 논이 얼마나 근사한 장면인지 그때는 몰랐다. 이런 건 꼭 나이가 들어서야 깨닫는다. 물론 요즘은 농촌체험마을이라는 게 있다. 여러 농사에 참여할 수도 있고 탈곡이나 허수아비 만들기 같은 것도 할 수 있다. 문제가 있다.
ⓒ (주)팝엔터테인먼트
ⓒ (주)팝엔터테인먼트
어린 시절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아이들은 자랐다. 마음대로 자랐다. 어디서나 자랐다.
이런 프로그램은 갓 쉰이 된 독신의 남자를 위한 건 아니다.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하는 것이다. 혼자 갔다가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얼마 전 <집으로>를 다시 봤다. 도시로 돌아가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상우는 할머니에게 비상 연락처를 쓴 쪽지를 건넨다.
20년 전 봤을 때와는 기분이 달랐다.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영화를 보고 잘 우는 사람은 아니다.
<타이타닉>을 보고도 울지 않아 원망을 샀다. 다시 본
<집으로>는 굉장한 최루 영화였다. 상우가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의 기억을 안고 나 같은 어른이 될
것이다. 나는 40년 전 전라남도
쌍암에서 거위 몰던 아이들이 궁금해졌다. 그 아이들과 정말이지
놀고 싶었다. 하지만 거위는 혼이 빠지도록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