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유물이 품은 이야기

itme01
글. 황윤
(작가)
글자 크기

초충도 속 배추는 왜 활짝 펼쳐져 있을까

누구나 한 번쯤은 수박, 옥수수, 당근, 토마토, 바나나 등 작물의 품종개량 전후를 비교한 사진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야생의 채소와 과일이 수백, 수천 년에 걸쳐 개량된 모습을 비교해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놀라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밥상에 매일같이 올라오는 김치의 재료인 배추 역시 오랜 개량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그렇다면 개량 전 배추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를 위해 과거의 배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그림 두 점을 만나보기로 하자.

이번에 소개하는 초충도 두 점을 보면 화면의 중심에 큼직한 배추 하나가 자리하고, 그 주위를 나비와 잠자리, 벌, 무당벌레, 여치 등 다양한 곤충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다. 배추의 굵은 잎맥과 부드럽게 굽은 잎의 형태에서는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한 화가의 시선을 그대로 엿볼 수 있다. 우선 먹 선으로 잎맥의 구조를 잡고 짙은 녹색과 연녹색으로 잎의 색감을 표현했으며, 정적인 식물과 대비되듯 자유롭게 움직이는 곤충을 조화롭게 배치해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배경에는 화려한 색을 지닌 꽃을 일부 배치하여 배추만으로는 단조로울 수 있는 색감을 보완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담담하게 담아내면서도 알차게 생동감마저 부여했다.

이 그림이 특히 재미있는 이유는 비단 예술성에만 있지 않다. 가만히 살펴보면 화면 속 배추가 오늘날 김장철에 흔히 볼 수 있는 배추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잎이 둥글게 속을 감싸고 있는 결구배추가 아니라 잎이 사방으로 넓게 펼쳐지며 열린 형태인 것이다. 결구배추란 맺을 ‘결’과 공 ‘구’를 쓴 말로 잎이 안쪽으로 겹겹이 모여 속이 꽉 찬 형태를 지닌 배추를 의미한다. 현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결구배추와 달리 조선 후기의 배추는 얼핏 얼갈이배추와 유사해 보인다. 조선 후기에는 이처럼 잎이 서로 감싸지 않는 비결구형 재래배추도 재배되었으며, 이후 오랜 품종 개량을 거치면서 오늘날과 같이 속이 꽉 찬 결구배추로 변화했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관찰해 그린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초충도는 이러한 재래배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해당 그림은 예술 작품인 동시에 조선 시대 농업과 식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각 자료이기도 하다.

이 그림이 특히 재미있는 이유는
비단 예술성에만 있지 않다.

item07
item02

배추의 변화와 함께한 김장문화

배추는 원래 한반도에서 시작된 작물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중국에서 재배되던 배추 계통의 채소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과정으로 들어온 초기의 배추는 앞서 살펴보았듯이 잎이 넓게 퍼지는 비결구형 품종도 많았다. 이후 조선 후기부터 중국에서 유입된 배추 계통과 국내에서 재배되던 재래배추의 변화와 선발이 이어지면서, 배추의 형태와 크기도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품종의 변화는 매우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지역마다 다양한 재래종이 함께 재배되었으니, 지금처럼 전국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양의 배추를 볼 수 있게 된 것은 시간이 더 지난 후의 일이다.

결구배추의 보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일제강점기부터였다. 근대가 되며 중국계 등을 비롯한 개량 품종이 적극적으로 한반도에 도입되면서 결구성이 뛰어나 생산량이 많은 배추가 본격적으로 보급됐기 때문이다. 특히 속이 단단히 찬 배추는 겨울철 식량을 마련하는 데 유리했고, 김장에도 적합했다. 이후 재배 기술과 종자 관리가 발전하면서 결구배추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채소로 자리 잡는다.

독립 이후에는 우장춘 박사가 우리나라 채소 품종 개량에 남다른 역할을 하였다. 그는 배추와 무를 비롯한 다양한 채소의 품종 개량 연구를 이끌고, 현대적인 종자 생산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우리 기후에 잘 적응하고 병충해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여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그의 열정적인 연구와 성과는 이후 농촌진흥청과 민간 종자회사의 지속적인 연구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재배되는 김장배추의 기반이 된다.

배추 품종의 변화는 김장 문화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선 전기까지 김치에는 무나 순무, 갓, 배추 등 다양한 채소가 활용되었으며, 이후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춧가루와 젓갈 등을 활용한 양념 문화가 점차 발달했다. 특히 근현대에 결구배추가 널리 보급되면서 오늘날과 같은 배추김치가 김장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배추가 김치의 주인공으로 올라선 것이다. 이후 배추김치는 오늘날 우리 음식을 대표하는 반찬으로 완전히 자리 잡는다.

오랜 세월에 걸친 배추의 품종 개량과 농업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김장은 근현대 시대를 지나며 단순한 음식 만들기를 넘어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여 겨울을 준비하는 공동체 문화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가정에서 김치를 직접 만들기보다 구매하는 비중이 증가하고, 전 세계적으로 한국 음식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면서 김치 산업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2025년에는 102개국에 약 1억 6,442만 달러 규모의 김치가 수출되는 등 배추와 김치는 이제 세계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초충도 속 배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조선 시대 농업과 식생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잎이 활짝 펼쳐진 배추는 당시 재배되던 비결구형 재래배추의 모습을 보여주며, 더 나아가 중국으로부터의 품종 유입과 변화, 우장춘 박사의 연구를 거쳐 오늘날의 결구배추와 김장 문화가 형성되기까지의 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작은 그림 두 점이 예술 작품을 넘어 우리 식문화와 농업의 변화를 알려주는 역사 자료가 되다니,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초충도 속 배추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조선 시대 농업과
식생활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