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살아 숨 쉬게 하는 요소는 유물이나 공간 외에도 다양하게
존재한다. 키 비주얼Key visual을 중심으로 기획된
도록과 홍보물도 그중 하나다.
관람객이 처음 마주하는 포스터와 초청장, 손에 쥐는 도록과 리플릿
그리고 전시 공간 곳곳의 그래픽까지 모두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전시는 완성된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전시마다 주제와 유물의 특성을 반영한 시각
언어를 새롭게 설계한다. 이를 도록과 홍보물에 일관되게 적용해
전시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있다.
2025년부터
2026년 상반기까지 이어지는 세 번의
기획전 속에서, 전시의 주제가 어떤 디자인으로 구현되었는지
살펴본다.
전시 기획을 관통하는 얼굴, 키 비주얼과 포스터
도록과 홍보물 디자인은 하나의 키 비주얼에서 출발한다. 전시 주제,
대표 유물, 색채와 서체를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한 뒤 이를 도록과
포스터, 초청장, 리플릿 등 다양한 홍보물로까지 확장한다. 키
비주얼은 공간까지 이어져, 전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2025년 상반기 기획전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은 앙부일구仰釜日晷를 통해
농경사회에서 절기가 지닌 의미와 선조들의 과학적 지혜를 살펴보는
전시다. 키 비주얼은 앙부일구의 둥근 형태와 금속의 질감에서
착안했다. 실제 유물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금속 색감을 비롯해 흑색과
백색을 중심으로 절제된 색채를 사용했다. 중후한 서체를 적용해
천문 지식을 농경과 연결하는 전시 주제를 표현했다. 실제
앙부일구의 작동 원리와 절기를 소개할 수 있도록, 해가 뜨고 짐에
따라 그림자가 이동하는 모습을 활용한 무빙포스터를 선보였다.
이어 열린 2025년 하반기 기획전
<탄수화물 연대기>는 보리, 밀, 옥수수 등 친숙한 곡물을 통해
식문화의 변화와 세대별 기억을 조명했다.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는
1950~80년대의 시대 분위기를 반영해
복고풍의 키 비주얼을 구현했다. 구호를 외치는 듯한 전시명을 전용
타이포그래피로 새로이 썼고, 전시의 중심 유물들인 ‘포대’에서
가져온 색감과 질감을 디자인 전반에 활용했다. 밀, 보리, 옥수수와
관련한 유물에서 추출한 캐릭터와 문구를 더해 당시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무빙포스터는 이러한 요소들에
움직임을 부여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난 6월 막을 올린 2026년 소장품전
<손끝에서 핀 나날의 꽃>은 선조들의 삶과 오늘날 우리 문화에
스며든 꽃의 역사와 의미를 소장 유물로 제시했다. 키 비주얼은 대표
유물인 ‘과석과 꽃과 나비’에서 착안한 괴석과 꽃, 나비의 이미지를
손끝의 예술인 점묘로 재해석했다. 꽃과 자연에서 연상되는 분홍색과
녹색을 유물에서 추출한 뒤 변주해 중심 색조로 삼았다. 과거의 꽃이
지금 우리 곁에 핀 꽃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부드러운 서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드는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무빙포스터 또한 관람객을 만났다.
도록과 리플릿,
그리고 그래픽까지 모두
하나의 경험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전시는 완성된다.
전시의 개성과 내실의 기록, 도록
도록은 전시 기획을 비롯해 준비 과정에서 축적된 유물의 정보와
전시 공간 그리고 연출까지 함께 담는 책이다. 막을 내린 후에도
하나의 전시를 온전히 기록하는 자료이기에 그 기능과 역할이 크다.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 도록은 절기와 과학적 지식에
대한 설명을 보기 쉽게 담을 필요가 있었다. 일반적인 도록보다 큰
판형으로 구상하고, 지면을 넓게 펼칠 수 있는 양장제본을 도입했다.
다양한 정보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배열로 편집했다. 표지에는
앙부일구의 둥근 형상과 금속 질감을 반영했으며, 내지에서도 키
비주얼에서 이어지는 색감과 원형의 그래픽 요소를 연결해 유기성을
더했다. 이때부터 새롭게 기획자의 글과 전시 풍경을 책에 수록하여
전시 전반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탄수화물 연대기>는 시대적 분위기와 복고적 감성을 구현하기
위해 고심했다. 키 비주얼의 타이포그래피를 강조하는 간결한 표지를
기획하고, 누드 제본을 통해 곡물 포대의 박음질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내지는 그 시절의 신문과 홍보물이 연상되도록
꾸며 자연스럽게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전시 전경 외에도 옥외
홍보물 등 다양한 현장 분위기를 사진으로 남겼다.
<손끝에서 핀 나날의 꽃>은 국립농업박물관의 첫
소장품전이다. 꽃이라는 전시 주제를 전하는 것은 물론, 유물의
가치를 선보이는 데에도 방점을 두었다. 소장 유물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며 귀하게 열어보는 콘셉트를 담아, 내지를 책갑 구조의
외피로 덮고 감쌌다. 그리고 꽃을 품은 유물의 아름다움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표지와 내지에서 디자인 요소를 덜어냈다.
생화와 자이언트 플라워 등 현장 사진을 수록하고, 도감을 펼쳐보듯
유물 정보를 일람하는 도판 목록을 담았다.
전시로 초대하고 안내하는 인사, 초청장과 리플릿
초청장은 개막을 알리는 전령이자 발걸음을 청하는 권유다. 리플릿은
전시를 읽을 수 있는 메시지다.
전시는 노력과 합심으로 집대성한 무대이며, 관람객은 그 무대의
방점을 찍는다. 학예연구사는 전시와 소통할 수 있는 초청장과
리플릿을 기획하기 위해 골몰한다.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은 앙부일구 형태로 구조화한
조립형 초청장을 제작했다. 일상 속에 앙부일구를 놓아두며 전시를
환기하도록 유도했다. 리플릿 역시 원형의 앙부일구 모양을 펼쳐
전시 정보를 읽도록 구성해, 전시의 중심 유물을 기억할 수 있는
장치로 삼았다.
<탄수화물 연대기>는 크래프트지 봉투와 포대를 펼치는 방식의
초청장을 제작해 키 비주얼의 의도를 확장시켰다. 도록과
마찬가지로, 당시 신문과 홍보물에서 착안한 형식의 리플릿을 적용해
전시가 다루는 시대적 분위기를 연결했다.
<손끝에서 핀 나날의 꽃>은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모습을
형상화한 초청장을 제작해, 환대의 의미와 전시 주제를 동시에
전달했다. 펼치면 B3 규격에 가까운
대형 리플릿은 유물 정보를 알차게 수록할 뿐 아니라, 관람객이 전시
포스터를 소장하는 듯한 인상을 받도록 했다
전시의 기억을 잇는 방법, 기념품
기념품 역시 전시 경험을 이어가는 중요한 매체다. 오늘날 박물관
‘기념품굿즈, Goods’은 ‘상품’이라는 사전적 정의 이상의
가치를 좇는다. 전시를 관람하기보다는 감상하는 시대다. 기획에
공감하고, 유물을 애호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시를 감상하는
관람객을 위해 전시를 표현하는 기념품을 제작해왔다. 기념품은
전시를 다시 환기하는 요소이자 관람객이 전시를 기억하고 홍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앙부일구, 풍요를 담는 그릇>은 앙부일구의 형태와 키 비주얼
그래픽을 활용해, 금속의 질감을 살린 책갈피를 구현했다.
<탄수화물 연대기>는 유물 속 캐릭터와 문구를 활용한
리무버블 스티커로 기념품을 꾸렸다. <손끝에서 핀 나날의
꽃>은 ‘괴석과 꽃·새문양 항아리’, ‘책거리 병풍’, ‘풀과 벌레와
고양이’를 활용한 아트 엽서를 디자인해 소장품의 아름다움과 꽃의
의미를 일상에서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키 비주얼을 비롯한 도록과 홍보물은 전시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또 하나의 전시 언어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전시와 디자인이
함께 호흡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앞으로도 아낌없는 고민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