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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있는 풍경
‘문화가 있는 풍경’은 우리 박물관에서 진행한 포럼인 <찬란한 농업유산의 부활>에서 나눈 내용을 필두로, 6차 산업으로써의 농업과 농촌을 널리 알립니다.
농農, 문화와 예술로 우리 삶에 스며들다
2023 국립농업박물관 문화제
글 편집실 사진 봉재석, 변상은
국립농업박물관에서는 우리 고유의 농경 문화와 예술을 접목해 남녀노소 누구나 친숙하게 즐길 수 있는 뜻깊은 문화제를 개최했다.
지난 9월 7일, 기획전 ‘농農, 문화가 되다’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포럼, 전시회, 음악회, 연극, 식문화 프로그램, 체험 프로그램, 농부시장 등으로 구성된 4일간의 풍요로운 축제가 열렸다. 초가을의 주말을 맞아 가족 나들이를 나온 많은 관람객이 박물관을 찾았다. 폭넓게 준비된 문화 프로그램 덕분에 볼거리와 체험거리로 가득했던 축제의 현장을 직접 가보았다.
農, 어린이의 놀이와 배움이 되다
9월 9일 토요일, 3일째를 맞이한 문화제의 막을 연 것은 연극이었다. 중앙홀 대형 스크린 앞 복도를 무대 삼아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농업과 곡식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기획된 이 연극은 좌중을 휘어잡는 진행자의 재치 넘치는 대사와 연기로 관객들의 웃음이 쉼 없이 이어졌다.
특히 직접 무대에 오른 관객 두 명이 여러 연기자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장면에서는 연극의 몰입도와 재미가 한층 고조됐다. 처음 무대에 섰을 때는 쑥스러워서 멈칫거리던 참여 초등학생은 어느새 진심으로 배우처럼 연극에 동참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연극은 관객들에게 큰 웃음과 밥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끝이 났다. 낯설게만 느껴지는 농경 문화가 많은 사람에게 친근하게 와닿기를 바라는 문화제의 지향점을 잘 반영한 참여 프로그램이었다.
박물관의 주요 관람객인 어린이를 위해 준비한 이색적인 체험 프로그램도 인기가 높았다. 그중 하나가 ‘출동! 농박 탐정단’이다. 박물관 내·외부의 전시물을 활용하여 어린이들의 활동을 유도하는 활동적인 프로그램이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어린이박물관 앞으로 많은 어린이가 모여들었다.
참가자들은 박물관에서 제작한 추리 수첩을 나눠 받았다.
‘농박 탐정단’을 상징하는 모자까지 야무지게 챙겨 쓴 어린이들은 서둘러 박물관 곳곳으로 흩어졌다. 추리 수첩에 담긴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다. 농업관, 수직농장, 식물원, 곤충관 등 박물관 곳곳을 직접 찾아가서 눈으로 확인해야만 풀 수 있는 문제들이 어린이들의 발길을 재촉했다.
농박 탐정단 일원으로 문제를 풀었던 한 어린이는 “탐정이 돼서 박물관 이곳저곳을 다닌 것이 재미있었다.”, “추수할 때 쓰는 물건이 무엇인지 처음 보고 알게 된 것도 좋았다.”라고 손수 답을 적은 추리 수첩을 자랑처럼 내보였다.
어린이들의 신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던 곳이 또 하나 있다. ‘출동! 농기계 발명가’를 진행했던 교육동 피크닉실이다. ‘출동! 농기계 발명가’는 농기계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으로 쓸모없어진 폐장난감을 분해하는 것부터 행사를 시작했다. 안전을 위해 엄마나 아빠의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장난감의 부속을 하나씩 떼어냈다. 어느새 바구니에 폐플라스틱이 한가득 자리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린이들이 농기계 발명가가 될 차례다. 농기계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를 높이고 자원의 소중함과 환경의 가치를 전달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방향에 맞춰 어린이들은 분해한 폐플라스틱으로 자신이 원하는 농기계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주말에 핸드폰 보는 것보다 더 즐겁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을 줄일 수 있어 환경오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다.”라는 반응에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어린이들의 만족감과 학습 효과를 엿볼 수 있었다.
農, 새로운 문화, 신선한 축제의 가능성을 열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도 색다른 경험과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중 하나가 식문화 교육 프로그램인 ‘농農의 입맛을 잇다’다. 요리사, 유튜버, 인플루언서 등 식문화에 관련된 전문가들을 초대하여 ‘맛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시연회가 특별하고 이색적인 이유는 제철 농산물과 팔도의 곡물을 활용한 토박이 음식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입과 입으로 전해지는 토박이 먹거리는 대부분 농부의 입으로 전해지고 농촌에서 만들어 먹는 우리의 음식이다. 재료를 직접 수확한 농부, 전통 음식 연구가, 토속음식 요리가 등이 함께 완성한 옥수수 요리들이 본연의 맛과 깊은 풍미를 전하며 참가자들의 입맛을 매료시켰다.
커다란 크기의 둥근 상에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새로운 메뉴가 나올 적마다 사진을 찍고 냄새를 맡고 음식을 맛보면서 생소한 입말음식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농農이 전통을 되살리는 먹거리가 되고, 즐거움을 나누는 체험이 되고,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식문화가 되는 순간이었다.
‘어린이 그림 공모전 시상식’은 어린이들의 창의성과 농업의 가치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우리 농업·농촌, 사랑해요!’라는 주제로 진행했던 그림 공모전에 475명의 작품이 접수되었으며, 1차 및 2차 심사와 공개검증을 통해 씨앗·새싹·열매 부문에서 20명의 수상자를 선정했다.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식에 참여한 어린이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되어 보였다.
한 명씩 이름이 호명되고 시상대에 오를 적마다 수상자를 향한 축하의 박수가 대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농촌 사람들이 모내기 중에 새참을 먹는 모습을 그려서 새싹 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수상자는 “이번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조사를 하면서 농촌에 대해 알게 되어 좋았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 외에도 즐거웠던 농촌 수확 체험 활동, 자랑스러운 우리 농산물, 정겨운 친척 시골집 등 농촌의 다양한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 수상작으로 뽑혔다. 시상식 직후 수상자들은 어린이박물관 복도에 전시된 수상 작품을 함께 감상했다.
이날 문화제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초후初候의 기러기’라는 행사명의 작은 음악회였다. ‘초후’는 백로白露에서 추분秋分 사이 양력 9월 8일쯤에 해당하는 시기이며 기러기가 날아온다는 때이다. ‘초후의 기러기’는 박물관으로 날아온 뮤지션을 상징하며 뜨거운 여름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흰 이슬’을 뜻하는 백로처럼 촉촉하고 시원하게 적셔주리라는 바람을 담았다. 재즈, 포크, 락 등 다채로운 장르의 음악이 전해주는 낯익은 선율과 감미로운 연주가 관람객의 감성을 가을 하늘빛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문화제 기간 중 열린 행사는 이뿐만 아니었다. 9월 7일 금요일에는 제1회 기획전시와 연계한 ‘농촌, 예술에 물들다’ 주제로 제11회 국립농업박물관 포럼이 개최되었다. 포럼은 ‘모이다’ ‘잇다’ ‘그리다’ ‘남기다’ 키워드를 중심으로 농촌에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청년들의 활동을 조명하여 새로운 문화공간으로써 농촌이 가진 가능성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시간을 나누었다.
또한 교육동 요리교실에서는 우리 곡물을 활용한 요리 체험으로 ‘식(食)나는 요리체험’을 진행했다. 쌀과 밀, 보리 등 우리 주요 곡물과 오란다의 의미와 유래를 소개하고, 쌀을 이용한 오란다를 즐겁게 만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9월 10일 일요일은 박물관 야외 황토마당에서 양평에서 친환경으로 농사를 짓는 농업인과 함께하는 농부시장이 열렸다. 장터에서는 밀짚공예와 천연세제 만들기, 짜투리천을 활용한 손재봉틀 프로그램 체험을 통해 업사이클링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기존 농업에 대해 가졌던 선입견들이 독창적인 문화, 예술과 맞닿으면서 신선한 축제로 승화됐다. 멀게만 여겼던 농업, 농촌이 우리 삶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2023 국립농업박물관 문화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