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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가을호 no.8 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가을호 n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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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박물지

옛 농업 사회와 오늘날의

가을걷이

글. 강영주
(국가유산청 문화유산감정위원)
일재 김윤보 《서선농가사시경직실경화첩》 23폭

도1. 일재 김윤보 《서선농가사시경직실경화첩》

농가에서 이루어지는 경직 활동의 사계절 모습이 23폭으로 구성된 하나의 화첩에 담겼다.
특히 한 화폭 안에 가을 수확의 여러 과정을 동시에 표현해 가을 타작의 순서와 실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농가의 풍속을 그린 그림

《서선농가사시경직실경화첩西鮮農家四時耕織實景
畫帖
》은 근대기 평양의 대표적인 화가 일재 김윤보의 화풍을 따른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표지 제목의 ‘서선西鮮’은 평양을 중심으로 한 평안도와 황해도 지역을 뜻하는 말로 전체를 해석하면 ‘평양지역 농가의 계절별 농사짓는 일과 길쌈1하는 정경을 그린 그림’이란 뜻이다. 이 화첩은 종이 바탕에 먹과 엷은 채색을 사용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농가의 풍속 장면을 총 23면으로 구성했다. 특별히 이 작품에는 기존 김윤보의 풍속화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제목대로라면 당시 평양 지역의 농가 풍경이라는 것인데, 과연 서선 지역의 농사는 다른 지역과 달랐을까? 결론부터 말하지만, 농사는 전국이 거의 유사했을 것이다. 여기서 ‘서선’은 지명임과 동시에 당시 평양 화가들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지칭한 것이다. 보통 그림에 ‘조선○○○’, ‘평양○○○’라고 쓰는 것은 화가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한편으로는 이 화첩을 외국인이 조선의 이국적 농가 풍경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에서 주문 제작한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림의 주문자가 외부인이라는 뜻이다. 그중 수확기 농가의 타작 장면을 그린 화폭을 살펴보자.

1 길쌈 실을 자아서 베를 짜는 과정

김홍도와 김윤보 풍속화 속의 타작 장면

〈타작도打作圖도2를 가장 실감나게 표현한 화가는 조선의 대표적인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이다. 화면 중심부에는 평민[소작인]이 옷을 풀어 헤치고 볏단을 개상에 내리쳐 알곡을 털어 내면서도 흥겹게 일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반면 상단 우측에는 장죽을 입에 물고 갓을 비스듬히 쓴 양반[마름]이 자리를 깔고 다리를 꼬고 누워있다. 옆에 있는 술병으로 보아 술을 마시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림의 구도상 화면 윗부분에 그려진 양반은 마치 평민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며 감시하듯 배치했고 중하단의 평민은 감시를 의식하지 못한 채 노동에 열중하는 모습을 대비시켜 조선 후기 신분제 사회의 생활상을 표현한 듯하다. 거기에 김홍도의 탁월한 기량이 건강하고 활기찬 농촌의 풍경을 해학미로 승화시키고 있다.

단원 김홍도, 〈타작도〉 《단원풍속도첩》, 수묵 담채, 28×24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도2. 단원 김홍도, 〈타작도〉 《단원풍속도첩》, 수묵 담채, 28×24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반면 전2 김윤보의 〈타작도〉도1,3는 타작의 진행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며, 소극적이지만 양반이 노동에 참여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먼저 멀리 낫으로 벼를 베는 사람들과 지게로 볏단을 옮기는 사람들이 보인다. 마당에서 벌어지는 타작을 마당질이라고 하는데 이는 도리깨질과 개상질로 나뉜다.
모두 곡식의 이삭을 떨어서 알곡을 거두는 농사일이지만 도리깨를 사용하는 도리깨질은 2인씩 4인이 번갈아 도리깨를 내리치며 장단에 맞춰 작업한다. 도리깨질하는 인부는 각자 자신의 도리깨를 가지고 와서 사용하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도리깨질이 품앗이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뙤약볕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농부들은 노래를 불러 노동의 괴로움을 덜기도 했다. 충청남도 예산에서는 도리깨질을 할 때 “에헤야 딱딱/에헤야 딱딱/물러가 섬사넘기/들어가 꼴대넘기/가른 갈겨라/모도 갈겨라/지덕 영감 차렐세/호박 영감 물러가/우줄우줄 나오세/호박 영감 차렐세/에헤야 딱딱/에헤야 딱딱”이란 노래를 부르는데 전 김윤보의 〈타작도〉를 보면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타작도〉도3에서 길거나 넓적한 돌이나 나무 혹은 절구를 이용해 곡식단을 태질하여 알갱이를 떨어내는 작업 장면이 보이는데 이것이 개상질이다. 화면 우측 하단에 벼를 말리려고 쌓아놓은 볏짚 옆에서 두 명의 농부는 개상질을 하고 있다. 개상질이 끝나면 나비질을 한다. 나비질은 곡식의 검부러기, 먼지 따위를 날리려고 키 따위로 부쳐 바람을 일으키는 일이다. 화면 좌측 상단에 한 인물이 키를 높이 치켜들고 벼 알갱이[나락]를 바닥으로 흘려내고 있다. 나비질을 마치면 벼를 가마니[섬]에 담는 마질을 한다. 중앙의 두 인물은 벼를 담은 가마니를 야무지게 묶고 있다.
보통 농가경직도류의 작품은 병풍으로 제작되는데 이 작품은 농가의 다양한 경직 장면을 23폭의 화첩에 담아내어 감상용으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또 한 화폭에 가을 수확의 여러 과정을 표현하여 가을 타작의 순서와 실상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다. 그러나 소작농의 일과만 묘사된 것은 아니다. 바로 서서 비질을 하여 나락을 모으고 있는 인물의 묘사가 그것이다도3. 버드나무 아래 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두 양반은 일꾼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수확기의 농촌 풍경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도1.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손주를 안고 있는 인물과 술상 앞에 장죽을 물고 있는 인물은 역시 양반의 모습이지만 누워서 거드름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앉아서 옆 사람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나무 아래 나귀는 부귀한 양반의 것으로 보이는데 풍속화가 그러하듯 실상을 다루면서도 볼거리를 빼놓지 않았다. 

일재 김윤보, 〈타작도〉 《서선농가사시경직실경화첩》, 수묵 담채, 31.4x45.5cm
                ©국립농업박물관

도3. 일재 김윤보, 〈타작도〉 《서선농가사시경직실경화첩》, 수묵 담채, 31.4x45.5cm
©국립농업박물관

2 ‌누군가의 작품이라고 전해진다는 의미의 수식어

현대의 가을 수확 풍경

농경 사회에서 벼농사는 국가에서 관여할 만큼 중대했고 국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며 벼농사를 지었다. 봄의 모내기나 가을의 타작 등은 두레나 품앗이 같은 공동 작업이 필요했다. 근대기까지 이어졌던 타작이 현대에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현대로 넘어오면서 사람들은 개상 대신 그네3를 쓰게 되었고, 이어 경운기에 연결해 쓰는 탈곡기가 등장했다도4. 수작업이 필요했던 가을 추수가 기계화되어 편리해진 것이다. 여러 명이 일일이 볏단을 나르고 개상에 내리치는 대신 탈곡기에 넣기만 하면 낟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면 콤바인은 어떤가도5. 사진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콤바인은 여러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기계를 작동하는 작업자 1인이 수십, 수백 가마니의 벼를 논에서 직접 수확한다. 콤바인combine은 ‘결합’이라는 뜻인데 농작물을 베는 일[예취刈取]과 탈곡하는 일을 동시에 하는 농업 기계다. 논밭 위를 주행하면서 벼·보리·밀 등의 곡물을 베고, 말리는 작업을 생략한 채 이어서 탈곡하고, 선별과 정선 작업까지 동시에 하는 경우도 있다.
전통 시대 가을 수확기에 일반적이었던 벼를 베고 옮기고 말리고 타작하는 도리깨질과 개상질, 나비질, 마질은 사라졌다. 이제는 콤바인을 활용해서 이 모든 것을 해치운다. 신속하고 편리하고 경제적이고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 그 덕분에 우리의 생활과 형편은 나아졌다. 그러나 농가 풍경을 그린 〈타작도〉도3를 볼 때면, 농민들이 도리깨질 품앗이를 하며 일의 능률을 높이고 쌓였던 피로를 풀어내기 위해 불렀던 정겨운 노동요를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1970년대 전동탈곡기

도4. 전동탈곡기, 1970년대 ©국가기록원

현대 콤바인

도5. 콤바인, 현대

3 그네 벼를 훑어 탈곡하는 농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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