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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박물관의 유물, 전시, 체험, 교육 등을 소개해 즐길 거리를 더욱 풍부하게 보여드립니다.
봄과 함께 찾아온 화접도
자연의 이치와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다
꽃과 나비만큼 직관적이면서도 강렬하게 봄을 알리는 자연물이 또 있을까. 풍요롭고 다채로운 온갖 봄꽃의 색감, 미풍에 불어오는 꽃향내, 얇은 비단보다 더 가벼이 팔랑대는 나비의 날갯짓까지. 꽃과 나비가 가져다주는 설렘과 기쁨은 긴 겨울을 견딘 이들을 위로하며 오감五感을 자극한다.
예로부터 꽃과 나비는 인기 있는 그림의 소재였다. 꽃과 나비를 그렸다해서 화접도花蝶圖라 불린 이 유형은 때에 따라 호접도胡蝶圖, 군접도群蝶圖, 백접도百蝶圖라고도 불렸다. 호접도란 이름은 그 자체로서 호랑나빗과의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따위를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호랑나비와 제비나비는 나비 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해서 화접도에서 빠지지 않는다. 군접도는 말 그대로 나비의 무리를 그렸다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군접도에서 꽃이 빠지는 것은 아니다. 백접도는 백 마리 나비라는 뜻이지만, ‘백百’은 완전한 수를 의미할 뿐 그림 속 나비가 꼭 백 마리일 필요는 없다. 그저 많은 수의 나비를 일컬을 뿐이다. 따라서 화접도, 호접도, 군접도, 백접도는 큰 차이 없이 꽃과 나비를 그린 그림을 칭하는 제목으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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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2. 자세히 보기 팝업
국립농업박물관에는 10폭 병풍으로 꾸며진 화접도 한 점이 있다도1. 18세기 이후로 화접도는 병풍 형식으로 꾸며지는 게 인기였다. 따라서 이 작품이 10폭 병풍인 점만을 두고 특별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런데 가로 길이 340㎝에 이르는 화면 전체를 연결해서 꾸민 연폭 병풍이라는 점은 상당히 보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보통 화접도 병풍은 여러 화면에 꽃과 나비를 독립적으로 그린 후 각각의 단폭을 장황해서 만들기 때문이다도2. 게다가 현재 전하는 대부분의 화접도 병풍이 높이 1미터를 훌쩍 넘는 장병長屛임을 고려할 때 국립농업박물관 소장품은 높이가 48㎝에 불과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는 이 유물이 침병枕屛 혹은 단병短屛으로 꾸며짐으로써 안방에 펼쳐져 머리맡의 외풍을 막거나 방안을 장식하는 용도로 고안된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0폭의 병풍은 몇 가지 종류의 꽃으로 상단과 하단을 꾸민 후, 온갖 종류의 나비에 매미와 잠자리 같은 곤충을 추가하여 완성했다. 아울러 각 폭에 단정한 예서隸書로 다섯 글자씩 두 줄의 시를 써넣었다. 시는 꽃과 나비의 자태를 노래하고 있으며, 예서로 쓴 글씨는 담박하면서도 단정한 아름다움을 한껏 끌어올렸다.
<화접도 10폭 병풍> 속 나비 및 곤충 분류
제비나비
1폭
6폭
9폭
홍점알락나비
2폭
7폭
9폭
호랑나비
6폭
8폭
9폭
배추흰나비
1폭
3폭
5폭
푸른부전나비
1폭
2폭
3폭
나비 외의 곤충
1폭 물잠자리
3폭 참매미
오른쪽 첫 폭부터 찬찬히 살펴보면 1폭 화면 상단에는 흰색과 붉은색 모란꽃을 배치하고 여기에 제비나비, 호랑나비, 홍점알락나비가 꽃에 앉은 모습을 그렸다. 하단에는 물잠자리, 배추흰나비, 크기가 작은 푸른부전나비도 보인다. 2폭에는 하단에 핀 국화꽃 위로 홍점일락나비, 제비나비와 참매미가 보인다. 3폭에서는 제비나비, 호랑나비, 푸른부전나비, 배추흰나비가 한가로이 노니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단부 분홍색 국화에는 매미가 앉아 있는데, 한 마리는 등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배를 보여 작가가 매미를 실제 관찰한 것을 토대로 그렸음을 알 수 있다. 4폭에도 제비나비, 호랑나비, 홍점알락나비가 등장하는데 상단부에 복숭아꽃이 풍성하게 핀 모습이 인상적이다. 나비 떼는 복숭아 꽃잎에 날아들거나 사뿐히 앉아 있다. 5폭 하단에는 모란꽃이 분홍색과 빨간색을 띠며 풍성하게 피어있다. 제비나비와 호랑나비가 탐스러운 모란꽃 위에 앉아 꿀을 빠는 사이 크기가 작은 푸른부전나비와 배추흰나비가 공간을 채우며 화사하게 묘사되었다. 6폭 상단부에는 다시 복숭아꽃이 등장하며 7폭 하단 국화 옆으로 표범나비가 묘사된 것이 눈에 띈다. 6-7폭 나머지 공간에는 제비나비, 호랑나비, 푸른부전나비, 배추흰나비가 가득 등장한다. 8폭 하단부 국화 위로는 제비나비, 호랑나비, 홍점알락나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9폭 상단에는 다시 모란이 등장한다. 10폭 하단에는 참나리꽃이 보이며, 9-10폭 가운데에도 배추흰나비, 제비나비, 홍점알락나비, 푸른부전나비가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림에 사용된 색상이 빨간색, 분홍색, 노란색, 검은색, 초록색으로 한정적이지만, 그렇기에 묘사된 물상이 많아도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단아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울러 나비가 꽃에 앉은 것, 나는 것, 정면, 측면, 뒷면 등 다양한 모습과 각도를 포착함으로써 작가가 나비의 생태를 묘사하는 데 상당히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화접도> 10폭 병풍 중 제4폭, 복숭아꽃 사이로 노니는 나비
<화접도> 10폭 병풍 중 제7폭, 표범나비와 국화
나비는 예로부터 그 가벼운 날갯짓과 여기저기를 부유하는 생태로 인해 부박한 성정을 비꼬기 위한 수사修辭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긍정적인 의미에서 부귀富貴, 영화榮華, 부부간의 화합을 보여주는 대상으로 애호되었다. 봄에 나타나 꽃이 열매를 맺게 돕는 나비는 식물이 맞이하게 될 여름의 생장生長과 가을의 수확을 예령한다. 생명으로 이어질 수정을 돕는 존재이기에 나비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전하는 차원을 넘어, 식물의 생명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나비는 항시 활짝 핀 꽃과 함께 등장하며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된다. 나비의 존재와 생태 자체가 봄과 생명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화접도의 화면을 따라 한 폭 한 폭 나비의 모습과 이름을 맞추어 보다보면, 올해 봄은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을 것이다.
*나비의 동정(同定, Identification)에 충남대학교 응용생물학과 오수민 연구원님, 꽃의 동정에 성균관대학교 고연희 교수님, 화접도 관련 자료 제공에 국립중앙박물관 명세라 학예사님의 도움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