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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온 편지
‘과거에서 온 편지’는 농업에 관한 옛글을 소개해 현대인에게 농업의 중요성과 삶의 교훈을 남기며,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가치를 전달합니다.
세종이 권농교서에서 당부한 관료의 책무
「권농교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농가집성}(청구기호 고9100-4)의 1책
내가 생각건대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
농사는 먹고 입는 것의 근원이고 임금의 정사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것(농사)은 백성들의 크나큰 생명과 관련된 것이기에, 그리하여 천하의 지극한 수고로움을 쏟아야 하는 것이라,
위에 있는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이끄는 것이 없으면, 어찌 백성들로 하여금 부지런히 근본(농사짓기)에 힘쓰고 삶을 살아나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인가.
予惟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 農者, 衣食之源,
而王政之所先也. 惟其關生民之大命,
是以服天下之至勞, 不有上之人誠心迪率,
安能使民勤力趨本, 以遂其生生之樂耶.
(하위지, 「丹溪先生遺稿」 文, 「勸農敎書」<見東文選>,
「세종실록」 105권, 세종 26년 윤7월 25일 임인)
세종은 1444년 윤7월 25일에 농사 권장을 강조하는 내용의 교서, 「권농교서」를 내렸다. 세종의 「권농교서」는 왕명을 받은 하위지가 지은 것으로 그의 문집 「단계유고丹溪遺稿」에 수록되어 있고, 후에 「동문선東文選 」에도 실리게 되었다. 세종의 「권농교서」에 대해서 「세종실록」의 번역자는 임의로 “옛 성현들의 예를 들어 백성들이 부지런히 농사에 힘쓸 것을 하교하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이 제목만 살펴본다면 「권농교서」의 주요한 훈계 대상이 농사짓기를 생업으로 삼는 백성이라고 커다란 고민 없이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세종이 「권농교서」를 내린 대상은 중앙 관료와 지방 수령이었다. 농민이 농사를 힘껏 짓도록 이끌어야 하는 책무를, 특히 지방 수령에게 부과한 것이었다.
세종은 「권농교서」의 첫 부분에서 관료들에게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명제를 새삼 강조했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들은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긴다는 것이었다. 왕조 국가로서 왕이 주권을 행사하지만,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하고, 백성들이 하늘처럼 섬기는 것이 바로 먹을 것이라는 점을 관료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분명하게 제시했다. 이어서 농사짓는 것에 관한 일이 먹고 입는 것의 근원이고 임금의 정사에서 가장 앞서 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조선왕조에서 임금을 보좌해 나라의 정사를 실제로 감당해야 하는 것은 관료였다. 세종은 관료의 권농을 강조하면서 먼저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것을 관료의 책무로 규정했다. 그런데 백성이 하늘로 여기는 것은 바로 ‘농사짓기’였다.
당시 백성이 살아 나가고 나라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업 생산이 해마다 차질 없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해 관료, 특히 지방 수령이 농민에게 적절하게 농사를 짓게 하는 권장책, 장려책을 실행해야 했다.
세종의 「권농교서」는 앞선 구절에 뒤이어 아주 중요한 주장을 펼치고 있다. 농사짓는 일이 살아있는 백성의 크나큰 생명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사람이 지극하게 수고해야 하고, 위에 있는 사람이 진실한 마음으로 이끌어야만 백성이 부지런히 농사짓기에 힘쓰고 삶을 살아 나가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단정하는 부분이다. 이 대목에서의 강조점은 바로 위에 있는 사람上之人, 즉 임금을 비롯한 관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백성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다. 관료에게 백성이 농사를 부지런히 지을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장려하는 수고로움을 쏟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권농교서」 중간 대목은 세종 자신의 권농 강조를 역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사실을 제시하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중국 황제의 농사를 권장한 역사적 사실, 조선 태조와 태종의 권농을 수행한 전례, 중국 지방 수령의 권농 고사 등을 소개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수령이 권농할 때 꼭 실천해야 할 대목에 대한 세종의 지적으로 이어진다. 먼저 농사지을 때 인력人力을 다 바쳐야 한다는 점, 즉 정성을 다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세종은 농사짓는 시기를 맞춰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적시를 어기면 안 된다고 주의를 준다.
「권농교서」의 끝부분은 세종이 지방 수령의 책무를 요약하는 대목이다. 자신과 더불어 나라를 이끌어가는 수령에게 군현을 맡겨서 다스리게 하는 뜻을 몸으로 체득하고, 선왕이 백성을 위해 제정한 법규를 준수하며, 선현이 농사일을 부과하는 규정을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각 지역의 풍토에 적합한 바를 널리 조사하고, 농서에 실린 기술을 참고하여 적합한 때에 조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다른 일을 벌여 농사일의 적시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종이 모범으로 두는 수령의 모습은 농민이 바라는 바를 헤아리고, 농사일에 필요한 것들을 살펴 이를 장려하면서 자신의 책무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었다. 수령이 자기 책무에 헌신해 백성이 농사에 힘쓰고 위로는 부모를 받들고 아래로는 처자를 양육하게 한다면, 백성이 오래 살고 나라의 근간이 튼튼해지겠다고 단정했다. 세종은 「권농교서」에서 관료가 마음을 다해 권농의 책무를 수행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예의 풍속이 굳건한 태평성대를 꿈꾸는 세종은 자신의 지극한 뜻을 중앙과 지방에 널리 효유하도록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