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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여는 사람들

‘내일을 여는 사람들’은 농업 및 박물관 종사자, 관람객 등을 인터뷰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애쓰는 모두가 내일을 여는 사람이라는 의의를 보여줍니다.

통일벼의 유물 기록으로
근현대 농촌을 되새기다

정하택 유물 기증자

글. 편집실 사진. 봉재석

배고픔과 가난을 운명처럼 여기며 살았던 1970년대, 국가에서 숙원사업인 쌀 증산을 위해 새로운 품종 ‘통일벼’를 개발했다. 녹색혁명을 이끈 이 혁신적인 품종에는 근현대 농촌의 땀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통일벼에 대한 기록이 정성껏 새겨진 정하택 씨 기증 유물의 가치가 높은 이유다. 국립농업박물관 기증자인 ‘정하택 씨’를 만나서 통일벼 기록물과 기증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중한 근현대 농촌 기록물 ‘통일벼 다수확 과제장’

정하택 씨는 식량 증산을 목적으로 개발된 통일벼 재배에 적극 동참했다.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 진학을 포기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확고한 목표가 그를 더욱 강하게 이끌었기 때문이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봉양,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꼭 증산왕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각종 식량 증진 경진대회에 참가해서 상금도 타고 소득도 올리는 것이 저의 목표였어요.”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지만 기술 센터의 영농교육 강의를 꾸준하게 받았고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보성군 농촌 지도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라디오 방송, 농민신문, 농촌진흥원 교육 등 벼 재배에 대한 지식을 누구보다 열심히 익혔고 배운 그대로 실천했다. 더불어 4-H 단체의 일원으로서 과제도 충실하게 수행했다.

“4-H 활동의 생명은 과제입니다. 과제물로서 통일벼 다수확 과정을 기록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웠어요. 기록장을 제대로 적으려면 영농지식을 습득하고 실행에 옮겨야만 가능합니다.
벼의 생육 과정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일반 품종이든 통일계 품종이든 병충해 상황이 발견되면 채취하고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 꼼꼼하게 스크랩했습니다.”

끊임없는 기록과 쉼 없는 실천이 낳은 노력의 결실과 열매는 역시 달았다. 군 단위를 시작으로 도 단위, 중앙 단위 경진대회에서 쌀 다수확 왕에 선정되면서 적지 않은 액수의 상금도 받았다. 무엇보다 그를 증산왕으로 만들었던 ‘통일벼 다수확 과제장’은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한 ‘근현대 민간기록물 공모전 대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대외적으로 높게 인정받았다. 국가적 노력인 정책에 더해 개인의 노력이 일구어낸 산물이자, 생생한 경험이 고스란히 담긴 유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유물 가치를 널리 알린 기회 ‘유물 기증 캠페인’

지난 2022년, 수원에서 개관한 국립농업박물관은 농촌과 농민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는 13,000여 점의 다채로운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유물이 박물관으로 인계되어 전시되는 순간,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주목받게 될 뿐 아니라 안전성과 보존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하택 씨가 국립농업박물관에 먼저 연락을 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48년 동안 다수확 과제장, 스크랩북, 상장, 부상으로 받은 라디오 등을 혼자 보관하다 보니 보존의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박물관에 문의를 드렸고 답변이 왔는데 제 기록물을 귀하게 여겨주니깐 정말 고맙더라고요. 결국 흔쾌히 기증을 결정했습니다.”

그는 보자기 속에 고이 보관하고 있던 30여 점의 유물 목록을 보냈다. 박물관도 통일벼 재배에 대한 기록이 상세하게 적힌 기록장 등 근현대 농촌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의 빛나는 가치를 알아봤다. 특히 개인 기록물로서 당시 농촌 현장의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는 의미 있는 자료들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저처럼 오래된 자료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그것을 박물관에 기증한다면 안전한 보존은 물론이고 유물이자 역사적 자료로서 전문가로부터 인정도 받고 많은 사람에게 교육적인 체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 대부분은 누가 만들었고 사용했는지 알 수 없는 소장품이나 기록물이다. 민간의 삶과 목소리가 스며있는 유물과 증언은 상대적으로 귀하다. 근현대 농촌의 유물이라면 구석진 창고에 갇혀 있거나 낡았다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더하다. 이번에 기증한 정하택 씨의 유물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국립농업박물관은 계속해서 유물 기증 캠페인을 이어갈 것이다.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역사적인 유물들이 널리 알려질 기회를 더 많이 얻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기증할 유물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락처: 031-324-0783, okseok1030@namu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