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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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민 정치에서 풍년 기원으로 경직도

글. 최경현(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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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막론하고 의식주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농업이 국가의 기틀을 이룬 유교 신분 사회에서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생산하는 활동은 백성이 전담해야 했다. 오늘날처럼 농기계도 없던 시절, 벼농사와 옷감 만드는 일은 인간의 노동력을 앗아가며 백성을 참으로 수고롭고 고단하게 했다.


유교 사회에서 국왕은 왕도 정치를 가장 높은 목표로 했다. 이는 인과 덕을 바탕으로 백성의 평안한 생활을 보장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궁궐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는 국왕이 아등바등 살아가는 백성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때 <경직도耕織圖>는 국왕에게 농사짓고 비단 만드는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백성을 진정으로 위하는 애민 정치를 유도하는 교훈이 담긴 그림이었다.


경직도의 기원은 중국 남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절강성 항주부 어잠현의 현령인 누숙이 <경직도>를 그려 고종(재위 1127-1162)에게 처음 바쳤다. ‘누숙경직도’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시경」 빈풍편의 「칠월」 시를 그린 <빈풍칠월도>를 참고하여, 벼농사와 비단 만드는 과정을 일의 순서에 따라 각각 스물한 장면과 스물네 장면으로 그린 것이다.1


청나라 강희제(재위 1662-1722)는 궁정화가 초병정에게 <누숙경직도>를 참고해 새로운 경직도를 그리라 했고, 1696년에 경작도 스물세 장면과 잠직도 스물세 장면으로 된 <패문재경직도>가 세상에 나왔다. 서문에서 강희제는 자신의 후계자가 애민 정치에 힘써야 하며, 백성도 국가 경제의 발전을 위해 부지런히 생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권농 개념을 추가했다.


조선 건국 직후부터 <빈풍칠월도>를 비롯해 <누숙경직도>, <패문재경직도> 등이 전해졌다. 국왕은 이를 토대로 한 경직도 병풍으로 백성을 위하고 사랑하는 통치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냈다. 세종(재위 1418-1450)은 1433년 중국의 <빈풍칠월도>를 참고하여 조선식 빈풍칠월도를 제작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숙종(재위 1674-1720) 재위 기간에 유입된 <패문재경직도>는 병풍과 족자 형태의 궁정 회화로 제작되어 애민 정치의 표상으로 활용되었으며, 김홍도나 김득신 등의 풍속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후반 궁정 회화로 제작된 경직도 병풍이 민간으로 퍼져 나갔으며, 19세기에는 민간에서 경직도가 세시풍속과 섞여 풍요를 기원하는 상서로운 그림으로 널리 애호되었다. 이때 경직도 속 벼농사와 비단 만드는 일은 백성의 풍속이어서 사대부의 풍류적 세시풍속과 함께 그려지게 됐다. 한산 거사가 한양의 거리 풍경을 읊은 「한양가」(1844년)에서 “궁궐 정전의 보좌 옆에 경직도 병풍이 놓여 있고, 광통교 아래 그림 파는 가게에도 병풍으로 꾸밀 경직도가 있다.”라고 기록해, 민간에서도 경직도를 구매해 즐겼음을 알 수 있다.


결국 경직도는 원래 궁정 회화로 국왕의 애민 정치를 독려하는 교훈이 담긴 그림이었으나, 19세기에 이르러 민간에서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그림으로 성격이 바뀐 것이다.

<경직도> 8폭 병풍 중 제3폭, 써레를 이용해 논바닥을 부드럽게 하는 농부

국립농업박물관 소장의 〈경직도〉 8폭 병풍은 19세기 후반 민간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그림 중 하나다. 민간에서 벼농사와 비단을 만드는 내용은 축소하고 사대부의 풍속을 추가하여 감상용 그림처럼 그린 것이다. 병풍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가장 오른쪽 화폭에서부터 왼쪽으로 옮겨가며 보아야 한다.


제1폭은 19세기에 즐겨 그려진 사대부의 풍속으로 당나귀를 타고 여행하는 양반이 강을 건너기 위해 나룻배를 부르고 있다.


제2폭과 제3폭은 벼농사의 일부가 그려진 풍속화다. 제2폭은 겨울이 지나 논바닥을 갈아 뒤집는 경耕을 그린 것으로, 농부가 소와 쟁기를 이용해 논의 흙을 뒤집어엎고 있다.


두 농부는 옆에서 괭이로 흙을 고르고 있으며, 양반과 손자가 논두렁에 놓인 지게에 기대어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논 위쪽의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도 있고, 지게를 맨 소년과 강아지가 그 뒤쪽 계류에 놓은 다리를 건너려 하고 있다.


제3폭은 뒤집은 논바닥을 부드럽게 하는 파욕耙褥과 논바닥을 다시 고르는 초, 모를 심는 발앙拔秧의 세 과정을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2으로 표현했다. 농부가 써레를 소에 연결해 논바닥을 평평하게 하고 있고, 두 농부는 모퉁이에서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고 있다. 바로 옆에는 2폭에 등장했던 양반과 손자가 농부들이 일렬로 모내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논두렁에는 농부들이 벗어놓은 모자와 신발, 술병과 그릇이 즐비하다. 머리에 새참 광주리를 인 여인과 지게에 술독을 실은 남성이 모내기하는 곳을 향하고 있다. 멀리 물동이를 맨 소년은 집으로 가고 있으며, 언덕의 집 안쪽으로 절구질하는 여인이 보인다.


제4폭은 나무 그늘에서 활을 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대부와 뙤약볕 아래 논에서 김을 매는 백성의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사대부들이 과녁을 향해 활을 쏘려 하거나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활쏘기를 할 수 있도록 전국에 마련된 사정射亭에서 활쏘기 대회를 하는 중이다. 「동국세시기」(1849년)에 의하면 매년 봄과 가을에 한양과 지방의 동리 사람들이 편을 나누어 활쏘기 대회를 하는 것이 세시풍속으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한편 농부들은 마을 뒤쪽 드넓게 펼쳐진 논에서 감독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잡초를 뽑고 있다. 3

<경직도> 8폭 병풍 중 제4폭, 백성과 사대부의 대조적 모습

<경직도> 8폭 병풍 중 제6폭,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를 만나러 가는 장면

제5폭은 추수를 앞두고 잠시 한가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다. 하단에는 사대부가 하인이 뒤에서 미는 작은 수레를 타고 산책 중이며, 나룻배를 탄 사람들은 강을 따라 풍광을 즐기고 있다. 언덕 사이의 집 안쪽에는 어머니와 아이가 보이고, 두 남성은 집 뒤편의 정자를 향하고 있다. 마을로 진입하는 고개 입구에는 나무꾼들이 땔나무가 가득한 지게를 내려놓은 채 쉬고 있다.


제6폭은 시집간 딸이 친정 부모를 만나러 가는 근친覲親4 과 가을에 벼를 추수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화면 앞쪽의 나룻배에는 남녀와 등에 짐을 가득 실은 당나귀가 있고, 쓰개치마를 두른 여성이 소를 타고 아이를 업은 남성과 함께 마을 옆을 지나고 있다. 보아하니 근친을 가는 것이리라. 마을의 집 안에 두 여인이 보이고 물동이를 맨 남성이 걸어가고 있다. 마을 뒤편의 논에서 농부들은 낫으로 벼를 베고 있으며 뒤로는 벼가 마르도록 볏단이 세워져 있고, 두 농부는 지게로 볏단을 나르고 있다. 5


제7폭과 제8폭은 추수를 마친 다음 사대부와 백성의 일상이 한가로워지면서 가을과 겨울의 자연 풍광을 강조해 산수화처럼 보인다. 제7폭은 가을 저녁 사람들이 누각에서 붉은 저녁노을과 기러기 떼가 쉴 곳을 찾아 날아드는 장면을 감상하고 있다. 제8폭은 눈이 쌓인 한겨울로 여성은 집안에서 물레를 돌리고, 외출했던 남성도 당나귀를 타고 귀가하고 있다. 물레를 돌리는 장면으로 비단을 만드는 잠업 전체를 대신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경직도〉 8폭 병풍에는 산수를 배경으로 여행, 활쏘기 대회, 산책, 근친 등 사대부의 풍속과, 벼농사를 짓고 비단을 만드는 백성의 생산 활동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고 여유가 넘치는 일상의 공간이 재현되어 있다. 풍년을 기원하며 누구나 소망하고 꿈꾸었던 일상의 행복한 순간들을 〈경직도〉에 그대로 펼쳐 놓은 것이다.

1 「시경」의 빈풍편 「칠월」은 세시풍속과 농업 및 잠업을 월령식으로 읊은 시가다

2 ‌이시동도법은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과정이나 사건을 하나의 화면에 함께 그리는 것을 말한다.

3 ‌‌경작도耕作圖에서 벼 사이의 잡초를 뽑는 것은 김매기라고 한다.

4 ‌‌근친은 귀녕歸寧이라고도 한다.

5 ‌경작도에서 벼를 베는 것은 수예收刈, 벼가 마르도록 볏단을 세우는 것은 등장登場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김현지, 「조선 후반기 세시풍속도 연구」, 「역사민속학」 43, 2013, pp. 133-171.

김현지, 「조선시대 농경의례와 세시풍속도 병풍의 기능」, 「한국민화」 6, 2015, pp. 42-65.

정병모, 「조선시대 후반기의 경직도」, 「미술사학연구」 192, 1991, pp. 27-63.

정병모, 「빈풍칠월도류 회화」, 「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2000, pp. 117-148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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