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젱이

외날따비와 쌍날따비

농경문 청동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농업의 시작과 제1차 산업혁명
땅을 일구고 씨앗을 뿌리고 성글게라도 가꾸어 수확하는 것은
‘기르는 농업’이자 ‘재배하는 농업’이었다. 약탈경제까지는
인공人工이 개입한 적 없었으니 자연 단계였고, 인공이
개입하여 재배하는 농업으로 발전하면서 문화 단계로 진입했다.
문화는 인공의 개입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영어로
문화를 뜻하는 ‘culture’는
‘재배하다’라는 뜻의 ‘cultivate’에서
유래한 것이다. 농업을 뜻하는
‘agriculture’는 땅을 뜻하는 라틴어
‘ager’에 문화라는 의미의
‘culture’를 연결한 복합어이다. ‘땅
위에 꽃핀 문화’가 농업이었고, 이것은 채취나 포획하여 먹던 자연
단계에서 벗어나 가꾸는 문화 단계였다. 그래서 문명사에서 농업의
시작은 제1차 산업혁명이었다.
고대에 처음 농사를 짓기 위해 땅을 파 뒤집을 때 굴봉掘棒, digging stick을 사용했다. 굴봉은 끝이 뾰족한 나무 막대기였다. 그다음
단계에는 따비를 사용해서 일했다. 따비는 철제 날에 긴 나무를
결합하고 발로 밟을 수 있도록 발판을 끼웠다. 따비 손잡이를 잡고
발판을 밟아 날이 땅속으로 들어가면 손잡이를 뒤틀어서 땅을
일구었다. 다만, 일구어진 땅을 밟지 않고 맨땅을 일구기 위해서
뒷걸음질 치면서 따비질을 했다. 따비의 모습은 대전광역시 괴정동
출토로 전하는 농경문 청동기에도 묘사되어 있다.

쟁기(볏)
인력에서 축력으로, 농기구의 변화
따비 몸통에 나무를 더 박아서 소형의 쟁기처럼 만든 것이
극젱이다. 극젱이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끄는 연장이었으나, 소가
끌 수도 있는 연장이었으니 인력과 축력 겸용이었다. 극젱이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 쟁기다. 쟁기에는 쟁기질할 때 생기는
‘쟁기밥’을 한쪽으로 넘어가도록 해 주는 ‘볏’이라는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극젱이보다 발전된 것이었다. 사람이 쟁기를 잡고
그 앞에서 소가 쟁기를 끌게 했으니 쟁기는 모두 축력 농기구였다.
조선 초기 강희맹의 농서 『금양잡록』에 보면 “소가 없는
농가에서는 농부 9명을 고용하여 갈면 소 한 마리의 노력을 대신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 마리의 소가 농부 9명의 끄는
힘견인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소를
이용하여 쟁기로 논밭을 갈아 농사짓는 단계는 농업사의 큰
진보였다. 한 마리 소가 끄는 쟁기를 호리, 두 마리 소가 끄는
쟁기를 겨리라고 했다. 그런 쟁기로 일하는 것을 각각 호리질,
겨리질이라고 한다. 겨리질에 대해서는
18세기 농서인 우하영의 『천일록』과
박지원의 『과농소초』에 현지 조사 자료로 기록되어 있다. 호리에
비해서 겨리는 보습이 크고, 멍에도 두 마리 소를 결합할 수
있도록 일자형으로 만들어졌다. 대개 겨리질을 하는 곳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지 면적이 넓거나 갈이 작업 조건이 나쁜 경사
지대였다.

쟁기(보습을 끼우지 않은 상태)

겨리쟁기와 겨리쟁기 멍에
경운기와 트랙터 그리고 농촌 산업화
쟁기와 트랙터를 잇는 중간 단계의 농기계가 경운기다. 우리나라에서
경운기는 1970년대에 보급된 갈이용
농기계였고, 트랙터는 1980년대부터
보급된 갈이용 농기계였다. 경운기는 사용자가 땅을 밟고 다니면서
사용했으나, 트랙터는 땅을 누비는 자동차처럼 운행자가 타고
다녔다. 트랙터는 영농 환경에 맞게 마력 수가 다른 것을 선택적으로
구입하여 쓸 수 있도록 했다. 농민들의 트랙터 구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자체나 농협에서 농기계 은행을 운영한다.
농업생산성을 평가하는 지표 가운데 ‘토지생산성’과
‘노동생산성’이라는 용어가 있다. 토지생산성은 일정 면적의
토지에서 생산량이 얼마인가를 평가하는 것이고, 노동생산성은 일정
시간 일했을 때 작업 성과가 얼마인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농기계는
모두 노동생산성을 높여 농업생산성을 향상시킨 주인공이었다.
예컨대, 200평약 661.2㎡의 논을 쟁기로 갈면 7시간, 경운기로 갈면 3시간이 걸리지만,
트랙터로 가는 경우 20분이면 된다.
쟁기질의 노동생산성, 경운기로 일할 때의 노동생산성, 트랙터로
일할 때의 노동생산성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순차적으로
향상되었다. 최근에는 로봇청소기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자율 주행
트랙터가 출시되고 있다.
경운기와 트랙터는 농민들의 노동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농촌
잉여 노동력이 도시로 진출하여 농촌 인구 감소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경운기와 트랙터는 농민들의 여가를 점진적으로 증대하여
농촌 산업화 이전에 비해서 남는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새로운 영농 활동이나 다른 경제 활동을 병행할 수도, 혹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시간이 다소 생겼다.

겨리쟁기를 활용해 논밭을 가는 모습

경운기를 활용해 논밭을 가는 모습

트랙터를 활용해 논밭을 가는 모습
갈이용 농기계가 이끈 역사적 진보
경운기와 트랙터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농가에서 소의 역할과 가치가
현저히 저하되었다. 아울러 구매가 쉽고 편리하지만 토질을
악화시키는 화학비료의 의존도가 더 높아지게 되었다. 한때 농가마다
일소를 먹이던 풍습과 외양간은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비육우를
사육하는 전문적이고 규모화된 축산농가가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이렇듯이 오늘날 농촌에 일반화된 갈이용 농기계인 트랙터는 그
역사적, 문화적, 생활사적 진보를 주도한 공로가 대단하다. 트랙터의
효용이 연쇄적으로 다른 대형 농기계를 도입하는 발판이 되고,
농민들의 삶을 구조적으로 바꾸고 있다. 고대의 굴봉에서 따비를
거쳐, 극젱이가 쟁기로 바뀔 때까지는 인력을 전제로 한 농기구였고,
쟁기는 축력을 전제로 하는 농기구였다. 경운기에 이르러서 엔진을
이용한 동력을 공급받아 그 확대형인 트랙터에 의해서 농업 기계화
시대의 큰 획을 긋게 되었다. 고금을 돌아보니, 사라지는 것과 새로
등장하는 것이 이렇게 대비된다.


양기훈, 〈쟁기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