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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 표지 및 서문

글. 이병희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농사직설』이 보여 주는 순환적 농사법

세종대에 편찬한 『농사직설農事直說』은 현전現傳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의 농서다. 우리나라 농업 경험을 조사해 만들었고, 널리 보급되었으며, 이후 편찬된 농서에 큰 영향을 주었다.

… 농사는 천하 국가의 큰 근본이다. … 우리 주상 전하[세종]에 이르러 밝은 정사를 이어서 다스리기를 도모했는데 더욱 백성의 일에 뜻을 두었다. 오방五方의 풍토가 같지 않아, 심고 재배하는 법에 각각 마땅함이 있기 때문에 옛 서적과 모두 동일하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여러 도의 감사에게 명해 주현州縣의 노농老農을 찾아 방문해 토질에 따라 이미 시험해 본 경험을 갖추어 아뢰도록 했다. 또 신 정초鄭招에게 조리와 순서를 덧붙이게 했다. 신 정초와 종부소윤宗簿小尹 변효문卞孝文이 펼쳐 보고 참고해서 중복되는 것을 삭제하고 절실하고 중요한 것을 취해 한 편을 찬술해 완성하고 제목을 ‘농사직설農事直說’이라 했다. …

- 『농사직설』 서문 중

‘농사는 천하 국가의 큰 근본이다’라고 천명했다. 농민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생존은 농업 생산에 달려 있었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먹는 것이 필수고, 그것은 대부분 농업으로 조달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먹는 것의 근본은 농업에 있다’라거나 ‘농업은 의식衣食의 근원이다’라고 표현했다.
농업은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고 사회를 존속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국가를 유지하는 재정 원천이었다. 국가에서 지출하는 군수 비용이나 관리의 녹봉 지급, 기타 재원은 대부분 농업에서 공급했다. 농업 생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가재정은 궁핍해지며 국가의 존립 또한 위협받는다. 산업이 크게 발달해도 식량은 대부분 농업이 제공한다. 농업은 언제나 가장 기본적인 경제 영역이므로 현재에도 또 미래에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농사짓는 방법을 수록한 농서는 전근대 시기에 매우 중시되었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농서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국 농서는 13세기 원나라에서 편찬된 『농상집요』였다. 『농상집요』는 중국 황하 유역 화북 지방의 농업을 중심으로, 작물의 재배 기술을 정리한 것이므로 그 재배법을 조선에서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었다. 조선의 토양과 기후 조건에 맞는 재배법을 체계화한 새 농서가 필요했다.
세종대에 농서 편찬을 위해 먼저 농업 관행을 조사케 했다. 세종 101428 충청도·전라도·경상도 감사에게 삼남 지방의 관행적인 농업 기술을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고을의 노농老農들을 방문해, 그들이 직접 경험해서 터득한 농사 방법을 조사해서 글로 올리도록 한 것이다. 보고한 내용을 다듬고 정리한 이가 정초와 변효문이었다.

『농사직설』에서 다루고 있는 작물은 삼과 참깨를 제외하면 모두 곡물이다. 벼, 기장과 조, 피, 콩·팥·녹두, 보리와 밀, 메밀이 중심인데 그중 가장 중시한 것은 벼농사였다. 각 작물의 갈이, 파종, 제초, 수확, 시비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갈이와 김매기를 중시하며, 작물 재배를 절기에 맞게 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토양을 살펴 작물을 선정·재배할 것을 주장하는 점도 중요한 사항이다.
『농사직설』에 보이는 작물 재배 방식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많이 사용하는 현대의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 크게 보면 생태계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재배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병충해를 감소시키는 농법을 택하고 있다. 밭벼와 피·팥, 흰참깨白胡麻, 백호마와 늦팥晩小豆, 만소두, 참깨와 녹두, 들깨와 기장 혹은 조 등의 잡종법섞어짓기을 소개하고 있다. 같은 농지 안에서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는 것은 작물을 튼튼하게 해서 병충해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파종할 때 눈이 녹은 물을 저장한 항아리나 나무통에 종자를 담갔다가 건져내 햇볕에 말리는 것이나, 나무통에 소와 말 외양간 구덩이의 오줌을 풍성하게 담고 거기에 종자를 담갔다가 건져내 햇볕에 말리는 것은, 종자를 소독해 병충해를 예방하는 일이다. 잡초를 갈아엎거나, 땅을 깊게 가는 것도 병충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풀을 펼쳐 태운 뒤 갈이 작업하는 것과, 김매기를 자주 하는 것 역시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일이다.

『농사직설』에서는 다양한 거름을 언급하고 있는데, 초목이나 농업부산물을 활용하는 것, 녹비綠肥를 사용하는 것, 그리고 사람이나 가축의 분뇨를 이용하는 것 등이 보인다. 특히 우마분은 양질의 거름으로 활용하고 있다. 외양간 밖에 웅덩이를 만들어 저장한 오줌에 곡식의 줄기·껍질을 태운 재를 섞어 만든 거름은 매우 양질이었다. 또 봄·여름 사이에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우마의 외양간에 펴 놓고 5~6일마다 꺼내 쌓아서 거름으로 삼으면 보리 농사에 좋다고 했다. 우마의 배설물을 모아 양질의 거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녹두가 무성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밭을 갈아엎는 녹비 활용법은 잡초가 나지 않고 벌레가 생기지 않게 하며, 척박한 토질을 기름진 것으로 바꾸는 효과가 있다. 이것 역시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훌륭한 농법으로 녹비 작물은 달라졌지만 현대에도 사용된다.
『농사직설』의 순환적인 작물 재배 방식은 지속 가능한 생산을 보장하는 농사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농사법은 현대의 친환경농업, 유기농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시사를 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