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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경력관)

박물관 브랜드 마케팅의
의미와
국립농업박물관의 길

박물관의 브랜드는 눈에 보이는 로고나 문양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곡차곡 쌓인 박물관에 대한 신뢰이자, 한 기관이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다. “이곳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물음에 한결같이 답할 수 있고 공통으로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을 때 비로소 브랜드가 생긴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국제박물관협의회(ICOM)는 “박물관은 유무형 유산을 연구·수집·보존·해석·전시하여 사회에 봉사하는 비영리, 영구 기관이다. 박물관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어 이용하기 쉽고 포용적이어서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촉진한다. 박물관은 공동체의 참여로 윤리적, 전문적으로 운영하고 소통하며, 교육·향유·성찰·지식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라고 정의한다. 브랜드의 본질은 바로 이 문장 속에 있다. 상업적인 기관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회와 소통하고 미래 세대에게 의미를 전하는 것이 박물관 브랜드의 근간이다.

반가사유상의 사유를 브랜드로 만든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물관으로, ‘사유의 방’은 그 철학을 아름답게 구현한 사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유산은 변함이 없다. 문화유산에 생명을 부여하고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사유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어두운 통로를 따라 들어간다. 방의 제일 안쪽에 앉아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마주하는 순간, 관람객은 조용한 사색의 시간을 갖게 된다. 조명, 동선, 약간 기울어진 벽면의 질감까지 모두가 ‘사유’라는 단어를 형상화한다.
이 공간은 2021년 개관 이후 20257월 말 기준으로 341만 명이 다녀갔다. 사람들은 전시를 관람하러 온 것이 아니라, ‘사유한다는 경험’을 얻기 위해 찾아왔다. 그 경험이 바로 브랜드고 국립중앙박물관이 추구하던 것이다. 사람들은 사유의 방에 들어가면 말수가 적어진다. 조용히 걸어가 반가사유상과 마주 서고 천천히 걸어 뒷모습까지 바라본다. 이 감성은 일상으로 확장됐다.
문화상품으로 만들어진 ‘반가사유상’은 최고의 인기 상품이 되어 6차 예약판매까지 이어졌으며 현재까지도 인기가 높다. ‘사유의 방’ 모티프를 담은 스타벅스와의 협업 상품은 출시 직후 품절되었다. 문화재의 이야기가 현대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전통이 감성의 언어로 만들어질 때, 브랜드는 완성된다.

세계의 박물관이 말하는 브랜드, 다가가 사람들 안에 있기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제이지와 비욘세의 뮤직비디오 ‘APESH*T’를 계기로 팝 문화와 예술의 접점을 확장했다. 2018년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평소 800만여 명 정도였던 루브르의 관람객은 다음 해 1,020만 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영국의 농업박물관 MERLMuseum of English Rural LifeSNS에서 ‘절대 유닛’이라는 유머러스한 게시물로 한때 세계적인 화제를 일으켰다. 농업과 유머를 결합한 그들의 시도는 영국과 미국의 박물관까지 퍼지면서 농업 문화가 고리타분하다는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앞선 사례는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하나의 원리를 공유한다. 브랜드는 대상이 아니라 경험이며, 경험은 태도의 언어로 완성된다. 기관들에 대한 경험은 간접적으로 먼저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이 직접적인 경험으로 이루어졌을 때 사람들은 더 큰 공감을 가지게 되며 그것을 기억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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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 ⓒUnsplas, Chris Kari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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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Unsplas, Federico Scarionati

루브르의 사례처럼 협업은
새로운 관람 동력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도 박물관의
정체성과 철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국립농업박물관, 땅 위의 시간

국립농업박물관은 농업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단순히 농업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것을 넘어 체험, 교육, 휴식을 통해 농업의 가치를 배우고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된 곳이다. 필자는 지난 국립농업박물관 포럼을 위해 그리고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 농업박물관을 살펴보면서 정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지금은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에게 인지되고 기억까지 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국립농업박물관이 서있는 땅은 오랜 농업의 역사를 품고 있다. 조선 정조 때 축조된 축만제의 둑이 있고, 일제강점기의 권업모범장이 있으며, 농촌진흥청의 실험 포장이 그 뒤를 잇는다. 여기에 2022년 새로 국립농업박물관이 자리한 것이다.
말 그대로 ‘농업의 역사’ 위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단지 농기구를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땅을 일구는 사람의 손, 계절의 흐름, 흙냄새와 씨앗의 시간까지 담아내는 ‘생명의 박물관’이라 생각한다. 어린이, 농업인, 청소년, 다문화가정, 노년층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이다. 국립농업박물관은 ‘생산의 기억’과 ‘공존의 미래’를 잇는 다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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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농업박물관이 나아가야 할 다섯 가지 브랜드의 길

국립농업박물관이 어떤 방향으로 가면 좋을지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본다.
첫째, 미래의 농업을 말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박물관은 과거의 기록뿐 아니라 미래의 농업을 이야기해야 한다. 기후 위기, 식량안보, 생물다양성과 같은 주제는 이제 농업 문화의 중심 서사가 되었다.
둘째, 농업인이 콘텐츠가 되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농부의 삶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농기구, 씨앗, 토종 곡물 같은 소재가 현대 디자인과 만나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탄생할 수 있다.
셋째, 디지털 농업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SNS와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농업의 일상을 위트 있게 전달하는 방식은 젊은 세대와의 접점을 넓힌다. 영국 MERL이 그랬듯, 농업이 ‘재미있다’는 인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넷째, 협업의 균형을 지키는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대중문화와 협업하되, 박물관의 본질과 메시지를 잃지 않는다. 루브르의 사례처럼 협업은 새로운 관람 동력을 만들지만, 그 안에서도 박물관의 정체성과 철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장소의 언어로 말하는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 축만제, 농촌진흥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지층을 전시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한다면, 관람객은 ‘장소를 걷는 경험’ 속에서 농업의 시간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20BTS‘Dear class of 2020’을 촬영하며 장소와 브랜드가 연결 지어진 것도 참고할 만하다. 촬영 장소를 찾은 많은 국내·외 관람객들이 인증 영상과 사진을 찍고 온라인에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