造家大小任意 三面築蔽塗紙油之 南面皆作箭窓塗紙油之 造突勿令煙生 突上積土一尺半許 春菜皆可載植 於夕令溫 勿使入風氣 天極寒則 厚編飛介掩窓 日瑗時則撤去 日日漉水如露 房內常令溫和有潤氣 勿令土白乾 又云作因於築外掛釜 於壁內朝夕使釜中水氣 薰遍房內
집[온실]을 짓되 크기는 임의로 하며, 삼면은 (담으로) 막고 종이를 발라 기름칠을 한다. 남쪽 면은 살창을 내고 종이를 바르고 기름칠을 한다. (바닥에) 구들을 놓되 연기가 나지 않게 하고, 구들 위에 흙을 한 자 반약 45cm 정도의 높이로 쌓아 온갖 봄채소를 재배할 수 있도록 한다. 저녁에는 바람이 들지 않게 하며, 날씨가 몹시 추우면 창에 비개飛介*를 두텁게 덮어주고, 날씨가 풀리면 즉시 철거한다. 매일 물을 이슬같이 뿌려주고, 방안은 항상 따뜻하고 윤기가 있게 하여 흙이 하얗게 마르지 않게 한다. 또 이르기를 밖에 가마솥을 걸어 아침 저녁으로 가마솥에서 발생되는 수증기를 방안에 두루 퍼지게 한다.
* 비개 저장에 사용된
농구로 짚을 엮어 만든
멍석과 같은 도구
2001년 청계천 고서점의 폐지 더미
속에서 ‘산가요록山家要錄’이라는 고서가 발견되었다.
산가요록은 조선시대 1450년경에 어의
전순의가 농업을 비롯해 음식 조리와 저장에 관한 내용을 담은 종합
농서다. 그 중에서도 ‘동절양채冬節養菜’ 편, 즉 ‘겨울에
채소 키우기’ 항목에 온실을 건축하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산가요록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온실의 역사를 서양에서 찾으려는
노력이 많았다. 네덜란드 무이젠버그Muijzenberg가 쓴 「온실의 역사A history of greenhouse, 1983」에 따르면 1619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 난로를 이용한 난방온실이 설치되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그 후 1691년 영국에서 온실의
공기를 덥히는 방식이 개발된 것이 과학적 난방온실의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450년경 우리
조상들이 건축한 난방온실은 독일보다
170년, 영국보다
240여 년이 앞섰다. 서양 온실은
공기를 직접 가열하는 방식으로 온도를 올린 것에 비해, 조선시대
온실은 구들로 바닥 난방을 하고 습기도 공급하는 방식으로 겨울철
채소를 재배했다. 좀 더 과학적으로 환경을 조절했다고 볼 수 있다.
온실은 식물에 유리한 환경을 꾸며 광합성을 극대화하면서도
경제성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고려해 조선시대 온실의 우수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햇빛: 온실 내벽을 기름종이[들기름을 칠한 한지]로 도배하게 되면
내부로 들어오는 햇빛이 벽면에서 반사되어 실내에 골고루 퍼지게
되어서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남쪽면에 살창[창문]을 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온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길게 놓였음을 알 수
있다동서동. 지붕이 하나인 온실은 방향이 동서동인
경우, 남북동에 비해 겨울철 채광이 최고
15% 더 좋다. 남쪽면 전체로 채광이
이루어지는 온실은 양지붕형 온실보다 이론적으로 채광이
200% 우수하다. 오늘날 온실에
사용되는 유리와 비닐은 겨울철이 되면 이슬이 맺히게 되는데
기름종이는 한지여서 맺히지 않는 장점이 있다.
② 에너지 절감: 온실의 채광이 우수하면 광합성에도 도움이 되지만
난방에 사용되는 에너지도 절감할 수 있다. 낮에 천정으로 투과된
햇빛은 바닥과 황토 벽체에 흡수된 후 밤에 열로 전환되어 온실
내부로 흘러나온다. 또한 온실 삼면이 황토벽이고 데워진 구들의
열이 지속되어 단열효과가 매우 우수하다. 추운 겨울철 저녁에 남쪽
천장을 가려 열 손실을 줄이는 기술은 오늘날 온실에서도 많이
사용한다.
③ 수분: 식물은 물을 뿌리로 흡수하기 때문에 지하부에 물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흙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이슬처럼
뿌려준다는 내용으로 온실 내부의 바닥과 벽면이 건조하지 않도록
해주는 동시에 식물이 필요한 물을 적정하게 공급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④ 온도: 난로와 온풍으로 온도를 높이는 방식은 식물에 스트레스를
주며 뿌리가 있는 지하부까지 온도를 높이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식물의 생장은 지상부뿐만 아니라 뿌리의 발육도 중요하기 때문에
토양의 최적온도인 13~25℃ 정도를
맞추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조선시대 온실은 구들을 이용한
난방으로 토양의 온도를 적정 범위로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과학적이고 현대적이라, 우리 선조의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⑤ 습도: 조선시대 온실은 가마솥을 이용해 수증기를 공급했다.
공기를 직접 가열하는 방식은 공기가 건조해져서 식물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토양의 삼투압이 낮아져 생육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벌레가 많이 발생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기름종이는 방수성을 가져
덜 헤지고 습기가 통하는 특성이 있어 온실 내부의 습도가 적절하게
조절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오늘날 땀을 배출하는 운동복
원단인 ‘고어텍스’의 기능과 동일하다.
⑥ 공기 흐름: 구들을 가진 온돌 난방은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다.
일반적으로 열 전달 과정은 전도, 대류, 복사로 구분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 온실은 이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다.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그 열기가 구들장으로 전해지며전도, 바닥의 따뜻한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공기가 흐르면서 방 전체를
따뜻하게 한다대류. 또한 달궈진 구들은 위쪽으로 열을
내보내게 된다복사. 이 과정은 최첨단 벤로 온실*의 바닥 온수난방과 동일한 방식이며, 특히 공기의 흐름은 식물의
광합성을 돕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 벤로 온실 처마가 높고 폭이 좁은 양지붕형 온실을 여러 개 연결한 형태의 온실
조선시대 온실은 KBS ‘불멸의
이순신2004.9.~2005.8.’,
MBC ‘해를 품은
달2012.1~3.’ 및
tvN ‘폭군의
셰프2025.8.~2025.9.’ 등의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방영된 ‘폭군의 셰프’ 드라마에서는 왕실에 올리는 꽃과
과일, 채소를 기르는 곳인 장원서의 온실로 소개되었다.
이러한 조선시대 15세기 온실의
과학성은 실험을 통해 속속 밝혀지고 있으나, 그 기술이 후대에
전해지지 않은 이유를 성종실록 제13권에 기록된 왕명에서 짐작할 수 있다. “1471년 1월, 장원서에서 철쭉과의 일종인
영산홍을 임금에게 올리자, 왕은 꽃과 열매는 천지의 기운을 받는
것으로 각각 그 시기가 있는데, 제때 핀 것이 아닌 꽃은
인위적이어서 좋아하지 않으니 앞으로 바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 영산홍은 보통 4~5월에 핀다. ⓒ한겨레온
조선시대 온실과 마찬가지로 신기전, 거북선 등도 역사적 고증을 거쳐 복원해 선조들의 우수성을 증명했다. 이처럼 뛰어난 과학기술의 역사와 민족적 자긍심으로 연구개발에 매진해 K-방산, K-조선이 전 세계적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처럼 K-스마트팜 또한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