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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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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진진

글. 김도훈(영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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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꽃을 좋아한다. 남자가 무슨 꽃을 그렇게 좋아하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꽃을 좋아한다. 청년 시절에도 친구 생일에 꼭 꽃을 사서 갔다. 꽃을 선물하는 건 사실 대단히 섬세한 행위다. 아무 꽃이나 선물할 수는 없다. 연인에게 카네이션을 줄 수는 없다. 연인은 부모가 아니니까.

지난 18년간 꽃을 좀 멀리해야만 했다.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참 민감한 동물이다. 많은 꽃이 건강에 해롭다. 백합, 튤립, 히아신스, 은방울꽃은 고양이에게 급성 신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 꽃가루를 약간만 흡입해도 위험하다. 국화나 데이지 등 국화과 식물도 해롭다. 카네이션, 수선화, 철쭉, 아이리스, 수국, 라벤더도 안전하지 않다. 장미는 의외로 괜찮다. 그래서 지난 18년간 내 집에는 장미만 들였다.

사실 남자도 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척하지 않을 뿐이다. 꽃을 좋아하는 건 어쩐지 좀 남자답지 못하다고 느껴져서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꽃은 아름답다. 자연이 창조해 낸 수많은 것 중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거의 없다. 나는 대학 시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 영 마뜩잖았다. 물론 사람도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꽃보다 아름다울 순 없다. 사람은 아름다운 겉에 아름답지 않은 속을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 꽃은 그렇지 않다. 겉과 속이 똑같이 아름답다. 그러니 남자들도 이젠 남성성의 위협 같은 거 느끼지 말고 꽃을 가까이하시길 바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나오는 영화가 있다.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 <디올 앤 아이>2015다. 라프 시몬스라는 디자이너가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받은 뒤, 모두의 기대를 모았던 첫 컬렉션을 선보이는 8주간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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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선물하는 순간,
디올의 런웨이처럼 꽃향기가 온 집을 채우게 될 것이다.

모든 브랜드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새 수석 디자이너를 뽑는다. 전통의 디자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디올은 드레스 한 번 만들어보지 않은 남성복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를 선택했다. 모두가 걱정했다. 전혀 다른 성격의 브랜드와 디자이너가 만난 탓이다. 라프 시몬스는 첫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옷은 그렇다 치자. 타고난 재능이 있으니 옷은 잘 만들 것이다. 문제는 런웨이다. 어떤 방식으로 자신이 만든 새로운 디올의 옷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가. 라프 시몬스가 선택한 것은 하나다. 꽃이다.

라프 시몬스는 파리에 위치한 거대한 빈 저택을 생화로 채웠다. 모든 방, 모든 복도, 모든 벽과 천장을 살아있는 꽃으로 채웠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모델인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꽃으로 가득한 저택을 보며 감탄을 내놓은 장면이 등장한다. 아무거나 보고 감탄하지 않는 패션계의 악마마저 찬탄하게 만든 것이다. 그가 만든 디올의 드레스도 꽃 같은 자수와 프린트로 가득하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부럽다. 꽃을 사랑하고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천국에 가까운 장소이자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부탁드린다. 꽃을 두려워하지 말자. 꽃을 좋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 꽃을 사는 것도 두려워하지 말자. 나는 가끔 광화문에서 정장을 입은 채 작은 꽃다발을 사 들고 가는 젊은 남자들을 본다. 드물게 본다. 너무 드물다. 이들만이 문제가 아니다. 나처럼 늙은 남자가 더 문제다.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꽃을 선물한 것이 언제인가? 이십 년 전 연애할 때라고?

이 글을 읽고 나면 곧바로 근처 꽃가게에 가시라. 카네이션 말고 장미나 작약을 사시라. 향이 가장 강한 꽃을 사시라. <디올 앤 아이>처럼 집을 모조리 꽃으로 장식할 수는 없다. 요즘은 꽃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수십 년 만에 아내에게 꽃을 선물하는 순간, 디올의 런웨이처럼 꽃향기가 온 집을 채우게 될 것이다. 꽃은 사랑이니까. 마지막으로, 이 글은 화훼농가의 협찬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