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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여름호  NO.7 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여름호 N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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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박물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농악

글. 박본수
(경기도박물관 책임학예사)
김기창의 <농악> 그림

도1. 김기창, <농악>, 비단에 수묵채색,
전체 80.5×187cm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운보문화재단

이 그림은 운보 김기창의 작품
<농악>이다.
시원스러운 청록색조의 산을 배경으로 들판에서 모를 심고 있는
농부들과 풍물패를 통해 농촌의 일상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그림 속 농악

농경 사회였던 전통 시대는 늘 농사일로 분주한 나날이었다. 선조들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를 지어 그달 그달 해야 할 일과 세시 풍속을 기록했다. 백성의 생업인 농업과 누에치고 비단 짜는 일을 그린 경직도로 농업을 장려하기도 했다. 또 다양한 풍속도가 전해지는데, 농악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드물게 찾아볼 수 있다.

이한철의 <세시풍속도> 그림

도2. 이한철, <세시풍속도> (부분)
비단에 채색, 각 116×31.5cm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

조선 후기에서 말기에 활동한 화원 이한철1808-1893 이후이 그린 <세시풍속도>도2는 경직도의 일종이다. 월별로 농사짓고 길쌈하는 농촌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이 그림은 원래 1월부터 12월까지 모두 12폭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지금은 10폭만 전해진다. 그중 다른 경직도에서 볼 수 없는 두레풍장굿1의 장면을 담은 5월의 풍속 장면이 눈에 띈다. 그림 안에는 논에서 허리를 숙여 일하는 농꾼들 앞에서 농악을 하는 무리가 그려져 있다. 5월이라면 한참 김을 맬 때이므로 김매기 두레패로 추정된다.
농악은 꽹과리·징·장구·북 외에 소고·태평소 등의 악기 연주가 더해지고 제의적·놀이적·군사적·노동적·음악적·무용적·연극적 공연 요소가 결합되어 악가무희樂歌舞戱의 형태를 이루는 민속 연희이다. 농악은 ‘풍장’, ‘풍물’, ‘매구’, ‘걸궁’, ‘걸립’, ‘두레’ 등으로 일컫기도 한다. ‘풍장’은 풍악風樂에서 나온 말이며, ‘풍물風物’은 풍악에 쓰이는 기물 즉 농악기를 지칭하던 것이 풍악 전반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이다. 농악은 그 기원이 되는 굿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굿,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불러들이는 집돌이 의식 때 하는 마당밟이, 전문적인 풍물패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고사도 지내고 돈과 쌀을 거두며 연주하는 걸립굿, 농부들이 김을 매거나 농사를 다 지은 뒤 하는 두레굿, 마을 사람들의 구경거리를 위해 춤과 놀이 등을 선보이는 판굿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활동한 화가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은 1970년대부터 청록산수 연작과 바보산수2, 민화풍의 화조화 등을 그리며 한국적 소재와 미의식을 추구하였다. 1984년 71세 때에 그린 <농악農樂>도1은 시원스러운 청록색조의 산을 배경으로 듬성듬성 소나무가 선 들판에서 모를 심고 있는 농꾼들과 풍물패를 보여준다.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 쓰인 농기를 든 기수가 맨 앞에 서고 꽹과리를 든 상쇠로부터 태평소, 북, 장구를 든 풍물패 10명이 흥을 돋우며 신명 나게 행진하고 있다. 논두렁을 그린 선, 산과 바위의 윤곽, 그리고 소나무 줄기와 가지를 그린 선들마저 춤을 추듯 일렁인다. 허리를 숙여 모를 심는 농꾼들은 신나는 풍물 소리에 고단함을 잊고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다.

1 두레풍장굿 두레패가 논에서 김매기를 할 때나 공동 행사를 할 때 치는 농악

2 바보산수 풍경을 과장한 산수화

황금순의 <보온농요> 사진

도3. 황금순, <보은농요> (충북 보은군 보은장안농요축제장)
2020 농촌 경관 사진·영상 공모전 우수상 ⓒ 황금순

사진 속 농요와 농악

지난 2020년 ‘농촌 경관 사진·영상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보은농요〉도3는 ‘보은장안농요’ 또는 ‘장안두레농요’라 불리는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전역에 전승되어온 논농사 소리 장면이다. 2016년 보은군 민속경연대회와 2017년 제23회 충북민속예술축제에서 각각 대상을 받아 2018년 제59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첫 출전을 했다. 이 농요는 논농사 중 모찌기, 모심기, 초듬 아시매기3, 이듬 논 뜯기 작업에 불렸던 노래들을 엮은 것이다. 이 노래들은 두레를 통한 협동, 일의 능률 향상과 작업 과정에 걸친 힘든 노동을 신명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했다. 사진 속 장면은 흰옷을 입은 일꾼들이 한곳에 모여 풍물을 치거나 환호하면서 일제히 삿갓과 도롱이를 공중으로 던져올리는 모습이다. 아마도 힘든 작업을 마무리한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는 장면인 듯하다.
농요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논매는 소리〉, 〈모심는 소리〉 등을 보면 농요는 농업 노동의 일과에서 일과 휴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소리는 새참이나 점심이 나올 무렵과 한 논에서의 일을 끝내고 다른 논으로 옮겨갈 때 그리고 하루 일을 마무리할 때 집중적으로 부른다. 일과를 놀이로 마무리함으로써 그날의 피로를 완전히 풀고 다음 날 이어지는 노동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속에는 영자기와 농기農旗 사이로 징과 북, 장구 등 악기도 보인다. 황현黃玹, 1855-1910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대개 시골에서는 여름철에 농민들이 징과 꽹과리를 치면서 논을 맸다. 이것을 농악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농악에서 주로 쓰는 악기인 꽹과리와 징, 북과 장구는 타악기다. 두드리고 치는 타악기는 태고부터 인류와 함께 해왔다. 가죽 막이나 나무 막대기, 강철판이나 금속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지는 타악기는 단순히 흔들거나 때려서 연주한다는 점에서 가장 원시적인 악기라 할 수 있다. 흥겨운 노래 선율에 리듬을 더함으로써 음악을 즐기려는 인류의 오랜 염원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3 아시매기 초벌 김매기

전통을 재해석한 ‘Feel the Rhythm of KOREA’ MV 사진

도4. 전통을 재해석한 ‘Feel the Rhythm of KOREA’ MV ⓒ 한국관광공사

사물놀이로의 진화, 인류무형유산 농악

1978년 2월,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공간사랑이라는 곳에서 김덕수, 김용배, 최태현, 이종대 네 사람은 풍물 가락을 현대화해서 현대인들이 접근하기 쉽게 바꾸어 연주했다. 첫 공연이 끝나고 2개월 후 민속학자 심우성은 이 공연의 이름을 ‘사물놀이’라고 지었다. ‘꽹과리, 장구, 북, 징의 네 가지 악기[四物]의 놀이[연주]’라는 의미이다. 말하자면 사물놀이는 야외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 구성의 풍물놀이를 무대예술로 각색한 것이다. 그 후 사물놀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국악계에 새로운 장르로 우뚝 서게 되었다. 그 인기는 우리나라에서 그치지 않고, 전 세계를 무대로 한류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농악은 보는 사람들을 신명 나게 하고 공동체 의식을 느끼게 해주며 어깨를 저절로 들썩이게 한다. 이는 멋과 흥겨움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서의 상징이다. 농사를 지을 때 연주됐던 노동 음악인 농악은 민속 신앙과 통하는 제사 음악이기도 하며, 정월에 여러 집을 돌면서 복을 비는 지신밟기를 할 때도, 장사가 잘되길 기원할 때도 포함되는 중요한 민족의 유산이다. 버나와 상모돌리기, 무동 타기처럼 기예를 선보이기도 하는데, 최근에는 난타나 비보이 공연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합예술로 발전하고 있다.
2014년 11월 27일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는 한국의 농악을 “활력적이고 창의적이며, 공연자는 물론 관람객의 참여까지 이끄는 등 문화정체성을 제공하는 유산”이라고 평가하며, 우리 문화로는 17번째로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이날 등재 직후 한국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6개 농악 중 5대 농악(진주삼천포농악, 평택농악, 이리농악, 강릉농악, 임실필봉농악)으로 구성된 공연단이 현장에서 축하 공연을 선보여 회의 참가자 800여 명으로부터 환호를 받았다.  


참고문헌

김영운, ‌『국악 개론』, 음악세계, 2015, pp.16-133.

김진순, ‌「농요(農謠)」, 『한국생업기술사전: 농업 1』, 국립민속박물관, 2020, pp.225-226.

박소영, 『우리가 몰랐던 우리 음악 이야기』, 구름서재, 2018, pp.124-133.

박주희, ‌「농악도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한국일보, 2014.11.27.

정병모, 『한국의 풍속화』, 한길아트,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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