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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여름호  NO.7 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여름호 NO.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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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온편지

350년 전 농서
현대 농업의 가치를 말하다

박세당의 『색경』 에서 발견한 농업의 중요성

글. 성종상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색경』 표지와 서문

『색경』 표지와 서문, 국립농업박물관 소장

『穡經색경』 序

농촌에서 생활하면서
농사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경험 많은 농부한테 얻어듣고,
나아가서 이 책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하나 연구하여 본다면,

이 책은 역시
농사꾼의 영원한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사람마다 모두 배고픔과 추위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니
그 이익이 넓지 않겠습니까?

- ‌박세당, 『색경』
노재준·윤태순·홍기용 공역, 농촌진흥청, 2001

어느 시대에나 먹고사는 문제가 중하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농경 사회인 조선시대에 농사는 왕들의 주요 책무로 간주될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조선 후기의 문신 박세당1629~1703이 쓴 『색경 穡經』은 여러 농업책을 참고해 펴낸 농사에 관한 책이다.

‘색경’이란 ‘(농업) 수확에 관한 경전’이라는 뜻이니 농사에 관한 한 최고의 책이라는 자신감과 함께, 당시 주류 유학자들이 맹종하다시피 한 유교 경전을 은근히 비판한 제목이 아닌가 한다.
『색경』은 박세당이 당시 관념에 치우쳐 현실을 도외시하던 유학자들을 비판하면서 벼슬을 떠나 수락산 아래에서 농사지으며 은거한 지 꼭 10년 만에 일구어낸 성과물이다. 또한 100여 년 뒤 정조대왕이 농서의 으뜸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을 만큼 이전 농서에 비해 폭넓은 내용을 체계적으로 잘 정리한 농업 백과서이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350년 전의 농서지만 실용적이고 내용 폭도 넓다.
현대 농업 관점에서 참조해 볼 만한 점을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하나, ‌농업으로 소농의 경제적 안정을 추구했다.

박세당은 『색경』을 저술한 의도를 봉건 대지주가 아니라 직접 농업 생산에 종사하는 자들에게 쓸모 있게 이용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농사 기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가 자기 책을 참고하면서 경험 많은 농부에게 물어가며 농사를 짓는다면 누구나 배고픔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둘, 자연과 땅에 순응하는 농업 방식이다.

『색경』에는 천문, 지리, 기후 등 자연현상을 읽고 대처하는 지혜와 작물을 관리하는 내용이 잘 기술되어 있다. 해와 달, 별, 바람, 구름, 비 등의 자연 현상을 해석하거나, 산, 땅, 물의 현상을 보고 기후를 예상하는 법, 그리고 풀과 꽃나무, 새, 짐승을 관찰하여 날씨를 예측하는 방법 등이 상세히 다루어져 있다. 흥미롭게도 “땅을 사용한다” 대신에 “토지에 맡긴다”는 뜻의 ‘임지任地’라고 표현하면서 토질에 맞춘 작물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셋, ‌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소개했다.

박세당은 『색경』에서 농작물의 재배법만 다룬 것이 아니라 가축과 물고기 기르기, 양봉, 양잠, 다식茶食, 술 담그기 등에 이르기까지 농업에 필요한 기술을 고루 다루었다. 농사 관련 분야의 유용한 정보들을 다룸으로써 한정된 토지와 자원을 가진 소농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득을 높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넷, ‌다양한 밭작물 재배 및 관리 기술이 담겨 있다.

『색경』은 50종의 밭작물과 24종의 과실수, 연꽃 등 유용한 화초류와 약용식물 등 각종 작물의 재배법과 관리법을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품목별로 물과 토질 관리, 파종播種, 농기구 이용 등 구체적인 농사 기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현대 도시에서의 농사에서 그 유용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

다섯, ‌농사 기술서를 넘어 농업 경영까지 다루었다.

『색경』은 단순히 농사뿐만 아니라 ‘농사짓기를 다스리기’ 또는 ‘농사 지도 감독’에 해당하는 부분도 있다. 그것은 직접 농사짓기에 참여한 박세당 본인이 농업 기술의 개선과 개량, 농업 생산의 감독과 관리 등을 체험하면서 농업 경영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색경』에서는 농사 적기가 되면 농경지로 나가 일을 하고 때가 지나면 휴식하라고 하면서 농사일의 시기적절한 흐름을 강조했다.

여섯, ‌심신을 달래는 통로로서 농업 활동을 보았다.

박세당에게 농사는 자연과 교감하며 심신을 달래는 통로이기도 했다. 수락산 서측 계곡西溪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랑하여 그곳을 석천동石泉洞이라고 이름 짓고, 자신의 호도 서계초수西溪樵叟, 서계의 늙은 나무꾼라고 지었다. 중농주의 실학자로서 그의 주 관심은 ‘농업을 통한 생계 유지와 민생 구제’에 있었지만, 그는 수시로 자연과의 교감을 즐기며 심신을 달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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