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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겨울호 no.9 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겨울호 no.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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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주고싶은이야기

2024년 국립농업박물관 하반기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

글. 이윤희
(국립농업박물관 전시팀)
사진. 김세리

2024년 하반기 기획전 〈기다림의 맛, 시_간〉은 우리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장을 기본으로 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을 재조명한다. ‘시’는 기다리는 시간을, ‘간’은 간을 맞추거나 맛을 낸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한다. 발효 음식은 단순한 조리법 그 이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삶에 깃들어 있으며 특히 장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가치가 더욱 빛난다. 이 전시는 전통 발효 음식에 숨겨진 기다림과 섬세한 간 맞춤의 예술을 향한 찬사와도 같다.

전시입구
전시의 시작, 장 담그기

전시의 프롤로그에서는 ‘물’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장 담그기의 필수 요소인 깨끗한 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 공간에서는 관람객에게 발효 음식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발효 과정이 가진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장 담그기는 친숙한 주제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맛과 향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완성되며 장을 담그는 사람들의 인내와 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암시한다.

장의 과거를 보다 설명문
장의 과거를 보다 전시 중 장을 담그는 도구들
장의 과거를 보다

1부에서는 장의 기원과 역사를 다양한 유물과 기록으로 소개하며 한국의 발효 음식 문화가 지닌 깊이를 느끼게 한다. 한국은 콩의 원산지로, 장은 오랜 세월 동안 한국 음식의 중심에 자리했다. 중국 고문헌인 『제민요술』, 『본초강목』 등에는 발효 음식의 주재료인 콩의 원산지가 우리나라이며,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장을 담가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삼국사기』와 고구려 안악고분 벽화에서는 오래전부터 장 문화가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 준다.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대형 메주틀은 ‘샘표’에서 사용한 것인데, 자연과 발효의 소리가 나는 스피커를 달아 ‘Ferment발효되다’라는 이름의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우리의 전통 부엌을 재현한 공간은 메주를 만들 때 사용했던 도구와 영상을 보여 주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우리 조상들이 장을 담글 때의 일상을 떠올리게 한다.

장독대들
생명을 만들다

2부에서는 발효 음식이 독특한 풍미를 얻게 하는 ‘옹기’에 주목했다. 숨을 쉬는 옹기 속에서 미생물이 활발하게 작용하며 장이 숙성되는 모습을 미디어 파사드를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해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뿐만 아니라 『규합총서』와 『산림경제』 등의 서적으로 장 담그는 날과 장 담그는 법을 소개함으로써 장이 기다림을 통한 지혜의 산물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또한 조선시대 왕실의 기록과 순창 고추장 사례로 발효 음식이 맛과 건강을 위한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 전통 음식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진 지혜의 결정체임을 느끼게 한다. 국립농업과학원의 연구를 통해 전통 발효 방식을 현대에 맞게 계승하려는 노력을 소개하여, 과거의 발효 방식이 현대에도 가치 있는 연구 대상임을 강조한다. 발효 음식이 가진 가치는 한국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른 문화권에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장 담기 관련 서적
과거부터 미래를 먹다 전시관
과거부터 미래를 먹다

3부에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양한 발효 음식을 소개하며, 우리의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김치와 불고기, 떡볶이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과정도 함께 다룬다. 한국의 발효 음식 문화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지켜온 장류 명인들의 작품도 전시해 그들의 장 담그기 비법과 장의 다양한 종류를 엿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를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하려는 바람*을 담은 영상과 자료를 전시해 발효 음식이 가진 문화적 가치를 다시금 환기한다. 이 전시로 발효 음식이 하나의 문화유산으로서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 2024년 12월 3일, 한국 장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되었다.

버선본에 적혀있는 소원들
전시의 끝, 소원 버선본

에필로그에서는 나쁜 기운을 막고 소원을 담는 전통적인 상징인 버선본을 전시했다. 관람객이 QR 코드에 접속해 소원을 작성하면 화면에 떠오르도록 했다. 이는 장 담그기 문화가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을 넘어 인간의 염원을 담아내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장 담그기에 담긴 소망과 염원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발효 음식이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에 소망과 행복을 더해 주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 준다.
이번 전시 〈기다림의 맛, 시_간〉은 우리 생활 속 발효 음식에 담긴 의미와 기다림의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탐구하게 한다. 그리고 일상의 한 부분이지만 시간이 빚어내는 그 깊은 맛과 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돌아보게 한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발효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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