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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농업유산의
기억을 되새기다
글. 김효정(국립농업박물관 교류홍보팀)사진. 지역계획연구소 누리
형태가 있는 유산은 유형 유산, 흔히 유물이라고 한다. 반대로 물성이 없이 구전으로 내려오거나, 특별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기술은 무형 유산이라고 부른다. 무형 유산은 자연스레 발생해서 귀중하게 전해져 내려오다가도, 기술의 발전 따위의 이유로 금방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기록하지 않으면 다시는 접할 수 없는 귀중한 유산이다. 우리는 유물을 수집하듯 국가중요농업유산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올해는 ‘울진 금강송 산지 농업’, ‘울릉 화산섬 밭농업’, ‘상주 전통 곶감 농업’을 조사했다.
농업유산이라는 틀 바깥의 이야기
이번 조사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지역별로 네 명의 관계자를 선정하여
구술 채록을 진행한 것이다. 우리는 전통 농법과 고유의 문화를 계승하는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모두 중요하게 여겼다. 세월이 흐르며 언젠가는
사라질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울진에서 만난 어르신은 산지 농업에 종사했던 분답게 호랑이 이야기를 해
주셨다. 호랑이가 4명이나 되는 식구를 모두 물어 간 친척도 있다고,
몸통만 먹지 머리는 안 먹어서 흔적으로 머리가 남는다고 한다. 상주에
가서 인터뷰한 어르신께서는 공동체 생활 속에서 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인사를 잘하면 첫인상이 좋고,
인사를 열심히 하면 어르신들이 나서서 도와줄 것이라 했다.
어떻게 보면 농업유산과 관련이 적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쉽게 사라질 이야기들이다. 선조들이 쓰던
도구는 귀천을 떠나 세월이 지나면 유물이 된다. 옛날을 살았던 생생한
이야기가 유산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세월의 흐름에 빛이 바래는 유산
울진에 갔을 때는 전곡리 마을에 사는 옛 주민들이 쓰던 물건을 모아 놓은
작은 전시관이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간 마을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름
없는 전시관, 약 3시간에 가까운 인터뷰 작업이 끝날 때까지 누구도 그
전시관에 방문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어르신과 인터뷰할 때 귀농하고 싶은
청년에게 해 줄 조언 한 말씀을 여쭈었다. “이런 데 농사하러 오는 청년은
없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의 금강송면은) 70대가 젊으니까, 오래
못 간다고 봐.” 이 한마디에 구술 채록을 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이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이 보물창고 같은 전시관도 마을이 쇠퇴하면서 함께
사라질 것이다.
울릉도의 한 어르신은 섬 내에서 이루어지는 축산업의 미래를 걱정했다.
역사를 보면 우산국 시대부터 축산업이 존재했고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 2천여 마리가 섬에 있었다. 지금은 고소득 작목이 출연하고 육지에서 소
사육이 산업화하면서 울릉도의 소는 경쟁력이 사라져 400여 마리까지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으로 소에게 산나물을 먹여 나오는
분변으로 다시 산나물을 키우는 고유의 경축 순환 농법이 소멸 위기에
처했다.
구술 채록
농업유산의 소중함을 알리는 박물관
일련의 이야기가 보고서로만 남아 있기엔 아쉽다. 구술 채록한 결과물은 접근하기 쉽도록 영상으로 제작해 농업유산의 중요성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했다. 시청각 자료는 관람객들이 농업유산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박물관의 교육적 기능을 강화하는 동시에, 농업유산 보존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는 데 작은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는 농업유산을 보호하고 전승하는 과정에서 복합 문화 공간이라는 국립농업박물관의 특성을 살려, 농촌과 도심을 잇는 가교가 되고, 더 나아가 유산의 소중함을 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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