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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겨울호 no.9 농업박물관 소식 NAMUK MAGAZINE 2024 겨울호 no.9

웹진 본문

문화가있는풍경

농촌에 사는 즐거움, 함께 만나 보실래요?

사회적 기업 ‘고래실’ · 『월간 옥이네』

글. 박누리(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 편집국장)

“작은 군 단위 농촌 지역에 볼만한 게 뭐가 있으려고.” 흔히 ‘바깥’에서 농촌을 상상할 때 내뱉는 말이다. 학교에서도, 언론 매체에서도, 우리 사회 어디서도 ‘농촌’이나 ‘농업’을 제대로 가르치고 보여 주지 않으니 이런 말이 나오는 것도 일견 당연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거나 이런 현실이 고민인 사람에게 자신 있게 권하고 싶다. 충북 옥천의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 그리고 『월간 옥이네』를 주목하라고 말이다.

모를 들고 환하게 웃고있는 사람
차를 타고 있는 손

잊힌 농촌 문화를
발굴해 기름지게
가꿔 가겠다는 포부

‘바닥이 깊고 물길이 좋아 기름진 논’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고래실. 2017년 3월 창립한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의 포부와 지향도 바로 이런 의미와 맞닿아 있다. 옥천의 문화, 농촌 문화를 고래실 논처럼 기름지게 가꿔 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다.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은 교육·문화 활동을 통해 농촌 문화의 전형을 새롭게 만들어 가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한 지역 재생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를 위해 ‘시시콜콜 시골잡지’라는 별명을 붙인 『월간 옥이네』 발행, 지역 주민과 청소년을 위한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을 운영하며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발굴·생산하고 있다. 마을 여행, 지역 출판과 디자인 사업으로 옥천을 ‘새로이 볼’ 기회도 제공한다.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

지역 잡지 『월간 옥이네』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내외부 전경

지역문화창작공간 ‘둠벙’ 내외부 전경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이야기

『월간 옥이네』는 ‘옥천’이라는 작은 지역 이야기를 담으면서도 가장 널리 전파되는 고래실의 대표 콘텐츠 중 하나다. 전국 군 단위 최초이자 유일한 월간지로 2017년 7월 창간 이후 단 한 호도 쉬지 않고 발행되고 있다. ‘창간호가 폐간호’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쉽지 않은 지역 잡지 업계에서 이는 여러모로 귀한 기록이다. 외부 지원 없이도 지금까지 달려올 수 있었던 데는 ‘역사에 남은 1%가 아닌 역사를 만든 99%를 담겠다’라는 창간 취지를 잘 지켜 가고 있기 때문일 테다. 주요 매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농촌의 삶을 대상화나 낭만화 없이 깊이 있는 시선으로 담아낸 덕분이다.

『월간 옥이네』를 읽고 있는 어르신

『월간 옥이네』를 읽고 있는 어르신

토종 텃밭에서 키운 수세미로 친환경 수세미를 만드는 모습

토종 텃밭에서 키운 수세미로 친환경 수세미를 만드는 모습

농가월령가를
쓴다는 마음으로
농촌의 땅, 흙,
계절을 담습니다.
지역 농촌을 지켜 온
이들의 삶, 말없이
보듬어 주던 강, 산,
들녘의 이야기,
고샅과 여울까지
잊히는 것들을
낱낱이 그려 갑니다. - 『월간 옥이네』
창간 선언 중 발췌

사실 매호 지면 가득 농촌 풍경을 담아내는 것은 아님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이런 지향은 늘 지면 깊숙이 녹아 있다. ‘자치×자급×생태’라는 농촌과 농업의 가치를 핵심어로 삼아 ‘공동체’와 ‘사람’,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장터에서 나물 파는 할머니, 작은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와 청소년, 이주여성과 청년, 지역사회를 일구는 노동자와 사시사철 우리 땅을 지키는 농민, 오래도록 마을을 지켜 온 어르신의 이야기가 『월간 옥이네』 지면을 채운다. 대부분의 매체가 서울 중심, 권력과 가십거리 중심으로 채워지는 것에 대비돼 더욱 빛나는 지점이 아닐까.
농촌 기본소득이나 쌀값 문제, 이동권과 보건 의료 사각지대, 기후 위기 시대 농업, 여성 농민, 로컬푸드와 토종 씨앗, 면 지역 어린이와 청소년 권리 등 농촌 의제를 깊이 다루는 특집도 빼놓을 수 없다. 독자층이 20대 후반부터 70대까지 폭넓게 분포해 있다는 점, 옥천이 아닌 다른 지역 독자가 절반 이상이라는 점 등은 바로 이 같은 지면 구성에서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옥천에 살지 않아도, 지역 혹은 농촌 공동체에 관심 있는 이라면 궁금해할, 혹은 봐야 할 지역살이의 다양한 면면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 활동가나 향후 귀농·귀촌에 뜻을 두고 있는 이가 열독자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삶의 시야를 폭넓게 한다’라는 것은 『월간 옥이네』의 특장점. 경기도 안양에 거주하는 30대 초반의 독자가 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월간 옥이네』를 보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해 온 개개인의 소중한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 그러면서 좀 더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돼요. 이런 이야기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이 문장에서 ‘ ’로 표시한 부분은 『월간 옥이네』 지면의 콘텐츠 분류 기준이기도 하다.

다양한 문화 활동 포스터

다양한 문화 활동 포스터

서울의 눈으로
서울의 욕망을
말하는 대신

서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서울의 욕망을 깊이 새기는 주류 언론은 절대 지역의 삶을, 농촌의 삶을 긍정하게 하지 못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역의 눈으로 지역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고, 지역의 이야기를 지역의 입으로 전하는 『월간 옥이네』와 같은 매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는 지역이 좀 더 살기 좋아질까?’를 주된 질문으로 삼는 『월간 옥이네』는, 이를 지면 너머 지역사회 안에서 풀어 가기도 한다. 농촌 여성 청소년의 월경권 보도에서 시작된 월경권 교육과 공공생리대함 비치, 여가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청소년 문제를 보도하며 진행한 청소년 자립 카페 활동, 길고양이 등 동물권 기사와 함께한 생태공동체 캠페인, 청년 자립을 돕는 생활 기술 교육, 도시와 농촌을 잇는 로컬푸드 꾸러미 제작, 토종 씨앗 공동 텃밭 활동 등이 바로 그 예다.
지역경제가 불황에 불황을 거듭하고 있는 요즘, 사회적경제가 더없이 위축된 지금.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과 『월간 옥이네』의 활동 역시 수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 온 활동이 전에 없던 길을 만들고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어 왔음도 기억한다. 무엇이 되었든, 새해 우리는 옥천에서의 삶을 즐겁게 만드는,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활동을 계속해 가고 있지 않을까. 지금껏 그래 왔듯 말이다.

자립 카페 활동

자립 카페 활동

둠벙에서 여성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조 프로그램

둠벙에서 여성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직조 프로그램

후일담

“내 얘기가 뭐라고 그랴, 별거 없다니께.”
인터뷰를 요청할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다. 지역을 오래도록 지켜 온 이들이 어쩐지 이런 말을 꼭 한 번쯤은 뱉곤 한다. 서울의 눈으로, 서울의 욕망을, 서울의 입으로 떠들어 왔던 우리 사회이기에 이들이 이런 말을 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래실과 『월간 옥이네』가 가야 할 길도 명확하다. 당신과 나의 삶을 가능하게 한 농업과 농촌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이 불공정한 사회의 기울어진 저울이 조금이나마 수평이 되는 데 이바지하는 것. 앞으로도 충북 옥천에서, 옥천뿐 아니라 한국 사회를 다시 보게 할 활동을 이어 갈 고래실과 『월간 옥이네』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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