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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자리를 만드는
자리틀
도1. 자리틀 ⓒ국립농업박물관
농사일이 없는 날에도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삶의 자리를 만들어 온 농가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본다.
자리를 만드는 두 가지 도구, 돗틀과 자리틀
자리는 주로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만든 물건으로서 짚이나 부들, 왕골 따위를 이용해서 만든다. 자리에 관한 기록은 이미 신라시대부터 나타난다. 『삼국사기』 직관조職官條에 자리류의 생산을 담당한 것으로 보이는 관청의 이름이 있는데, 당시 자리에 대한 국가적 수요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 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그리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자리는 재료 및 제작방식의 차이와 변화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사용되어 왔다.
도2. 자리틀(돗자리틀), 나무,
186.5cm×66cm×94cm
ⓒ국립민속박물관
전통적인 자리는 ‘돗틀[돗자리틀]’과 ‘자리틀’을 이용해서 만든다.
돗자리를 만드는 돗틀은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날눈이 새겨진
도리[가로대]를 건 뒤 날실을 이용해서 짜나간다. 날실로는 칡덩굴의
속껍질인 청올치나 삼실麻絲, 마사 등을 사용한다. 작업을
시작하면 바늘대로 재료를 걸어서 날실 사이에 넣은 다음 바디로 쳐서
돗자리를 짠다. 이렇게 하면 날줄이 드러나지 않고 속으로 감춰지며
촘촘하게 짜지는데, 이 기술을 은경밀직隱經密織이라고 한다.
용수초龍鬚草, 골풀로 만든 귀한 돗자리인 등메와 보성의
용문석龍紋席은 이 방식으로 짠 것이다도2.
한편 자리틀을 이용해서 자리를 짤 때는 그 방식이 돗틀을 이용할 때와
사뭇 다르다. 틀의 기본 구조는 같지만, 바늘대와 바디 대신 무게감이 있는
고드랫돌을 사용한다. 도리에 일정 간격으로 날눈을 파고 거기에
고드랫돌을 앞뒤로 걸친 뒤, 도리에 재료를 놓고 실이 감긴 고드랫돌을
앞뒤로 넘겨 가며 자리를 짠다. 이렇게 하면 날줄이 밖으로 드러나는데,
이를 노경소직露經疎織이라고 한다. 짚자리나 화문석花紋席
등을 짤 때 이 방식을 사용한다도1.
자리 가운데 문양이 있는 화문석과 용문석은 주로 상층의 사람들이
사용했다. 이들 자리는 모두 왕골로 만드는데, 논에 심어 수확한 뒤 그
껍질을 잘게 갈라서 건조해야 하고 문양까지 넣어야 하므로, 먹고 살기에
급급한 하층민이 만들거나 구해서 사용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집에서는 필요할 때마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볏짚이나 보릿짚, 밀짚 등으로
짚자리를 만들어 사용하곤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방바닥에 장판을 깔지 못하는 집에서는 짚자리와 삿자리
등을 깔기도 했다. 삿자리는 연못가의 습한 곳에서 자라는 삿갓사초를
이용해 엮은 자리이다.
농한기에 주로 하던 자리 짜기
도3. 가마니짜기, 1960년대, 『춘천의
어제와 오늘』(2006)
ⓒ춘천문화원
자리를 짜는 시기는 대개 농한기나 일기가 고르지 못한 날 등 농작업으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이때가 되면 집안의 남성 어른이 자신의 거처에 자리틀을 놓고 자리를 만들곤 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철이 되면 사랑방에서 자리나 가마니를 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도3.
도4. 단원 김홍도, 〈자리 짜기〉,
《단원풍속도첩》, 종이에 먹과 옅은 채색, 28cm×23.9cm, 보물 제527호
ⓒ국립중앙박물관
자리는 자가소비용으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부업으로
자리를 만들어 내다팔기도 했다. 단원 김홍도가 그린 〈자리짜기〉도4 라는 풍속화를 보면 물레질을 하며 실을 뽑아내는 어미와 아랫도리를
드러낸 채 막대기로 짚어가며 글을 읽는 어린아이, 그리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자리를 짜는 아비가 등장한다. 사방관四方冠을 쓴
아비와 독서하는 아들의 존재로 미루어 양반 신분의 가족임을 알 수 있다.
양반이라고 하면 보통 육체노동으로부터 자유롭고 살림이 여유로울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가족의 경우처럼 아비는 몸을 써서 자리를 짜고
아들은 바지도 챙겨입지 못할 만큼 궁핍한 경우도 적잖았다. 특히 아비는
노경소직 방식으로 자리를 짜고 있는데, 어려운 형편을 감안하면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자리를 팔았을 수도 있다.
이렇듯 한국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활용품이었던 자리는 인공
재료로 만든 공산품 자리가 보급되고 값싼 외제 자리가 들어오면서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게 되었다. 이에 따라 화문석과 용문석 등의 고급 자리는
전통공예로서 가치를 인정받아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짚자리처럼 널리 쓰인 것은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효율성과
경제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자리틀을 이용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만든
자리가 설 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자연의 산물을 재료로 삼아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사용하고, 못쓰게 되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자연친화적인 삶의 방식은, 환경위기에 직면한 현시점에서 되새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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