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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박물관에서는
‘지금 박물관에서는’은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과 운영 프로그램의 숨은 이야기를 소개하며, 여러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농민의 목소리를 남기다
국가중요농업유산 현장 조사의 숨겨진 뒷이야기
글. 손정수(국립농업박물관 농업교류팀) 사진. 홍덕석
농사를 잘 지으려면 여러 가지 필요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중에서도 땅, 물, 바람 등 자연의 도움 없이는 농사에 어려움이 따른다. 농민들은 이러한 자연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고, 돌담을 쌓았으며, 구들장 논을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농업 자원은 후대까지 이어져 유산으로 남았고, 국가는 이를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했다.
국립농업박물관은 국가중요농업유산 가운데 청산도 구들장 논, 의성 수리 시설, 제주도 밭담을 조사했다. 세 가지 유산의 자연환경을 기록하고 관련 자료를 목록화하며,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목표다.
*국가중요농업유산: 보전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여 국가가 지정한 농업 유산으로, 현재까지 총 열여덟 곳의 농업 유산이 지정되어 있다. 농업 유산은 환경과 사회, 풍습 등에 적응해서 오랜 기간 형성시켜 온 유형과 무형의 농업 자원이다.
구술 채록으로 남기는 농민의 이야기
구전해서 내려오는 이야기는 관계자의 구술을 통해 듣게 되는데, 이렇게 남긴 기록을 ‘구술 채록’이라고 한다. 구술 채록은 농업 유산에 관해 궁금한 점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활용했으며,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질문지에 작성한다.
질문이 완성되면 적합한 구술자를 섭외한다. 조사의 주제와 목적에 맞는 대상을 찾으려면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조사 주제와 관련하여 다양한 경험을 했고,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만큼의 연륜이 있어야 하며, 제보 내용의 신빙성이 높아야 한다. 이러한 제보자를 찾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사전 조사를 해야 한다.
자연스레 끄집어내는 농민의 목소리
구술자가 확보되면 본격적으로 구술 채록에 들어간다. 구술 채록은 면담자의 질문에 구술자가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채록 시작과 동시에 녹음, 수기 기록, 영상 촬영으로 모든 과정을 기록하는데, 특히 영상 촬영이 동반되면 구술자의 표정과 감정을 함께 기록할 수 있고, 결과물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면담자는 사전에 준비한 질문지를 바탕으로 질문하지만, 구술자의 답변에 따라 여러 이야기가 파생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구술자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려면 조사자와 제보자 사이의 라포**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라포 형성이 잘되면 답변의 신뢰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구술 채록의 기본 역량이라고도 볼 수 있다.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 간에 생기는 상호 신뢰 관계
다양하게 활용하는 농민의 기록
인터뷰가 끝나면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다. 질문에 맞지 않는 부가적인 답변을 삭제하고, 자료를 찾아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서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인다. 교차 검증을 마치고 완성한 구술 채록은 아카이브해서 박물관 소장 자료가 되며, 전시 등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해 대중에게 다가간다. 이외에도 후속 연구의 기초 자료가 되거나 구술 채록 조사 방법론의 교육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