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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1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박물관의 유물, 체험, 교육 등을 소개해 즐길 거리를 더욱 풍부하게 보여드립니다.

통나무 속을 비워 만든 김치 저장소,

나무독

글. 신탁근(온양민속박물관 고문)

수확의 기쁨과 함께 겨울 준비가 한창이다. 197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수확 이후에는 초가 이엉잇기와 문풍지 작업, 그리고 김장이 제일 큰일이었지만, 지금은 이엉을 깔거나 문풍지를 바를 일이 없으니, 오롯이 김장하는 일만 남아 있다. 아직 우리 곁을 지키고 있는 김치의 매력은 무엇일까? 점점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인기 비결은 어디에 있는가? 스페인의 올리브유, 그리스 요구르트, 인도 렌틸콩, 일본의 낫토와 함께 세계 5대 건강 식품으로 선정된 김치는 무엇이 다른가?
김치의 특징은 누가 뭐래도 젖산 발효에 있다. 대표적인 발효 음식인 김치의 맛은 일정한 온도에서 저장하여 젖산을 발효시키는 데서 나온다. 김치는 저장 및 보관 온도에 따라서 그 맛이 달라진다. 김치가 제맛이 들 때까지 온도를 높이면 빨리 익으나 계속해서 그 상태로 두면 신김치가 되고 만다. 이런 연유로 일단 익으면 온도의 변화가 적은 상태로 보관해야 제맛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요즘처럼 김치냉장고도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김치를 보관했길래 적당히 발효된 김치를 겨우내 먹을 수 있었을까? 김치는 계절 식품으로 저장 시에는 비교적 온도의 차가 적은 지하 움을 이용해야만 한다. 조상들은 일상생활에서 편리함을 도모하고자 땅에 항아리를 묻고 그 위에 구조물이 있는 뼈대를 갖춘 움집을 짓는 지혜를 발휘했다. 이것이 따뜻한 남부 지역의 ‘김치움’이다. 그렇다면 강원 지역 등 장독을 구하기 힘든 추운 북부 지방에서는 겨울 동안 어떻게 김치를 보관하여 맛과 가족의 건강을 지켰을까?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었던 그들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연과 함께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 즉 생활 경험 속에서 찾아낸 ‘나무독’이 있었기 때문이다. 통나무 속을 비워 만든 저장소 나무독은 전통 방식의 김치냉장고다. 나무독은 멀리 나가 장독을 구해오기 힘든 화전민촌이나 산촌 지방에서 주로 사용했다. 매우 추운 지방은 옹기를 장만한다고 하더라도 집 밖에서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특히 김치는 적절한 온도에서 발효시켜야 하므로 추운 지방에서는 옹기를 대신해 김치를 담을 그릇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피나무로 만든 독인 나무독이다. 나무독은 김치나 시래기, 무 소금절임 등을 갈무리를 하는 나무 그릇이라 할 수 있다.
강원도 산간 주변에서 많이 자라는 피나무는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하는 풍치수이며, 녹음수이자 가로수다. 한국, 만주, 중국이 원산지이며 깊고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줄기가 매우 곧바르며 가지도 비교적 곧고 길게 뻗어 나무 둘레가 두세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다. 특히 목재는 연한 황갈색으로 재질이 매우 연하며 결이 고와 가공하기에 편리하다. 강원 산간 지역에서는 이러한 특징을 가진 피나무를 주변에서 손쉽게 구해 속을 파낸 다음 이를 독으로 사용했다.

나무독의 주재료인 피나무는 목질이 물러 다른 나무에 비해 파내기가 쉬우며 가벼운 특징이 있다. 곧게 잘 자란 피나무를 높이 약 100cm3尺 3寸, 폭 60cm2尺 3寸 내외의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통나무 속을 호비칼로 파낸 뒤 통 속을 불로 태운 다음, 불에 탄 부분을 수세미로 잘 닦아내어 사용했는데, 이는 나무가 쉽게 부패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한편 통나무 바닥은 소나무 판을 독 크기에 맞춰 동그랗게 나무 두께만큼 파낸 다음, 바닥 양옆에 두 개의 귀를 달아 독을 고정한다. 나무독 입구에는 두 개의 걸고리를 양옆에 끼워 바닥과 몸체가 움직이지 않도록 칡 줄기로 위아래를 단단히 고정한 다음, 칡 줄기를 반복하여 여러 번 감는다. 그런 후 중간에 쐐기를 박아 주리를 틀어 나무독과 바닥이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한다. 바닥과 나무독 사이의 틈새는 잘 마른 청올치칡덩굴의 속껍질로 잘 메꾸어 김칫국물이 새는 것을 막아준다. 나무독 뚜껑은 굴피나무 껍질이나 너와 널빤지를 덮어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비나 눈을 피해야 한다.
강원도 등 추운 지역에 살던 우리 조상은 산간 지역의 혹독한 추위에도 동파되지 않고 한겨울을 잘 날 수 있는 보온성이 강한 두꺼운 피나무 독을 이용했다. 이러한 피나무의 보온성은 김칫독 이외에도 씨감자를 보관하는 나지막한 독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지혜는 자연과 함께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생활 경험에 대한 산물로, 앞으로도 보듬고 전승해 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